잡지에서 읽은 시

보리나방 외 1편/ 박성우

검지 정숙자 2021. 5. 25. 19:25

 

    보리나방 외 1편

 

    박성우

 

 

  아내가 겉보리 한 자루를 사 왔다

  아직 방아를 찧지 않은 것인데

  베란다 화분에 심어 키워서는

  새싹비빔밥도 해 먹고

  보리된장국도 끓일 거라며 들떠 있었다

 

  저러다 말겠지, 아내는 제법

  근사한 직사각형 화분까지 새로 들였다

  겉보리를 심고 물을 주는 아내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자르지 말고 그냥 키우면 안 될까,

  몇 번인가 나는 아내가 해주는

  새싹비빔밥을 말끔히 비웠고

  보리된장국을 뚝딱 해치우기도 했다

 

  어디서 이런 게 날아 들어왔지,

  늦은 밤 비명을 지르는

  딸애 방에 들어가 보니

  나방이 침대 위로 날고 있었다, 딱!

 

  그러나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방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날아다녔고

  나방의 근원지를 찾아내야만 했다

 

  아 여긴가? 베란다 구석에 있던

  보릿자루 안쪽은 나방의 천국이었다

  자루를 그대로 눌러 닫은 나는

  그것을 냉동실 안쪽에 욱여넣어

  나방 천국의 열기를 아주,

  식혀주지 않을 수 없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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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나방

 

 

  그냥 쌀이 아니라고 했다

  아내는 어디선가

  십 킬로짜리와 이십 킬로짜리 쌀을

  두 포대나 베달시켰다

  일체 약도 안 하고 키워서

  몸에도 좋고 밥맛도 좋을 거라는

  아내의 말은 맞았다

  수수와 조를 섞어 지은 밥은

  여간 맛이 좋은 게 아니어서

  쌀 한 포대를 금방 비웠다

  한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한동안 사라졌던

  나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두 번째로 개봉해 먹고 있던

  쌀을 휘저으며 살펴보니

  어린 쌀나방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무농약 쌀이 맞긴 맞나보네,

  내 검지를 타고 오른 쌀나방은

  식탁쪽으로 씩씩하게 날아오르며

  아무런 해가 없는 좋은 쌀이라는 걸

  몸소 증명해 보여주기까지 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문득 나는 나방을 먹고 사는 

  작은 새 한 마리를 키우고만 싶어진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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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에』 2021-여름(62)호 <시에 시>에서

  * 박성우/ 전북 정읍 출생,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거미』『가뜬한 잠』『웃는 연습』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