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선이에게
김소희/ 시인, 시애틀 거주
늦은 오후였나 봅니다
손에 잡힌 책 속
홀로선 이에게 라는 글귀가
홀로 선이에게로 보입니다
내 안의 꽃잎이 쿵 떨어지는 순간
현관문이 툭 열리면서
나야,
긴 머리를 고무줄로 묶은 스무 살 선이가 찾아옵니다
계절 하나가 출렁 출렁거립니다
비좁은 학교 앞 자취방으로 나를 끌고 갑니다
구석진 조명 아래 하얀 여섯 손가락으로
선이가 라면을 끓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픈 숫자 육
젊음의 조숙한 병증
한여름 감기처럼 시름시름 앓던 우린 춥고 외로워
벙어리장갑 안으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첫 번째인지 여섯 번째인지 모를 손가락보다 더 미숙하게
아픈 손을 걸고 멀어졌습니다
한 손가락을 손가락 사이로 밀어 넣고
낯선 방에서, 도시에서
철마다 빈 마디에 꽃을 피웠다는 선이는
전송되지 않은 문자만큼 밤을 비워냈습니다
금방 올 사람처럼 라면 상을 차려놓고
나에게서 한사코 멀어져 갔습니다
선이야, 지금 어느 밤에서 울음 울고 있니?
----------------
* 반년간, 타향과 본향本鄕을 잇는 징검다리 문예지 『한솔문학』(제4호) 2020-12월 <미주초대시>에서
* 김소희/ 2018년 ⟪미주중앙일보⟫ 신인문학상, 2020년『시산맥』으로 등단, 2020년 제1회<동주해외신인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지부 회원, 시애틀 거주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거룩한 통로/ 한만수 (0) | 2021.05.20 |
|---|---|
| 실직(失職)/ 이해우 (0) | 2021.05.20 |
| 자본주의 시대에 시의 소원/ 정대구 (0) | 2021.05.20 |
| 순환선/ 이도훈 (0) | 2021.05.19 |
| 누워 있는 나무/ 박헌규 (0) | 2021.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