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선
이도훈
한 사람이 죽었고 법의학자들은
그의 사인死因을 알아내기 위해
부검을 했다.
먼저 바쁘게 오르내린 계단이 줄줄이 달려 나왔다.
몇 바퀴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지구를 돌고도 남는다는 혈관엔 무수한
정차 역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더 울리지 않을 휴대폰에서는
남은 문자들이 재잘거렸고
생전에 찍은 사진들은 모두 뒷모습이었다.
몇 개의 청약통장과
돌려막기에 사용된 듯한 카드와
청첩장과 부의 봉투가 구깃구깃 들어있었다.
그중 몇 건의 여행계획서가 나왔고
퇴근길에 쭈그려 앉아 쓰다듬는
고양이 한 마리와 찰칵찰칵
열고 닫았을 열쇠 소리도 들어있었다.
읽다 만 책들의 뒷부분은
다 백지상태였다.
사람들 몰래 지구는 자주 기우뚱거렸고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계획을 쏟거나
계획에서 쏟아졌다.
오늘은 순환선에서 내려
애벌레의 마음으로 길고 긴 한숨을
느릿느릿 기어가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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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년간, 타향과 본향本鄕을 잇는 징검다리 문예지 『한솔문학』(제4호) 2020-12월 <특별詩選시선>에서
* 이도훈/ 서울 출생, 2015년『시와표현』으로 등단, 2020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맑은 날을 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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