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누워 있는 나무/ 박헌규

검지 정숙자 2021. 5. 18. 18:15

 

    누워 있는 나무

 

    박헌규

 

 

  저 누워 있는 나무는 뽑힌 나무인가, 심겨질 나무인가

  누워 있는 나무는 누워 있는 나무로 돌아가고

  나는 나로 돌아가는 나를 바라본다.

 

  이 양광에 얼굴이 나무 위로 비치고 또 비치고

  이 양광은 구름 뒤로 숨는다. 어느새 보도블록은

  다 깔리고 벽돌을 건네던 인부는 어디로 갔나.

 

  나무는 누워 있는 나무를 바라본다. 나는 태양은 

  자루를 풀어 나무를 이 음악을 바라본다.

  나를 듣는 음악이 나무를 바라보는 것이다.

  나무가 심겨질 땅도, 나무가 뽑힌 땅도

 

  발목을 덧대고 바 테이블 유리창에 떠 있다.

  나무는 발목을, 뿌리가 발목이라면

  뿌리가 둥근 저 흙덩이가 발목들이라면

  그 위에 발목 대신 자루를 얹고 누워 있더라.

 

  나무가 누워 있는 저 나무가 무슨 화학식 같고

  세상에 없는 원소 같고 일란성쌍둥이 같고

  보도블록에 놓인 흘러가는 물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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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 2021-봄(44)호 <이 시인을 묻는다/ 자선 근작시> 에서

   * 박헌규/ 2007년『현대시』로 등단, 시집『메모중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