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시대에 시의 소원
정대구
나의 시는 우선 돈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시가 옷이 되나 밥이 되나 그깟 놈의 시, 시지 구독료에 시집 사보랴 동인지 내랴 낭송회 하랴 시집 내랴 돈이나 잡아먹는 시라며 시를 구박하는 우리 마누라님의 입을 소원 없이 그 돈으로 콱 틀어막아 주는 그런 즐거움, 함박꽃잎처럼 입이 활짝 벌어지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어느 해이던가 장 보러 갔던 아내가 단돈 천 원에 샀다며 생전에 큰돈 한번 만져본다며 거의 A4용지 반만 한 만 원짜리 한 장을 신나게 흔들고 들어오면서 보여줬던 그 활짝 핀 함박웃음처럼 시도 돈이 된다는 걸, 큰돈이 된다는 걸,
그리하여 이게 시가 벌어온 돈이요 하고 보란 듯이 마누라님의 이마에 큰돈 한번 척 붙여주고 시도 한번 떳떳해지고 싶은 것이다 그러자면 우선 시를 엄청 잘 써야 되겠지 하긴 시인 누구는 시를 잘 써서 문예진흥기금을 몇 번씩이나 받고 또 누구는 여기저기 거금이 걸린 문학상도 몇 개씩 몰아서 받고 누구누구는 시집을 팔아 빌딩을 샀다던가. 이 정도면 돈과 시의 궁합도 짝짜꿍 칠 만한데 (그런데 이런 정보는 제발 아내의 귀에 안 들어가기를 바란다) 그 정도 시를 쓰려면 엄청 시를 잘 써야 하겠지 팔짝 뛰고 뒤로 자빠질 정도로 나의 시는 돈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게 안 된다면 나가서 죽든가 자본주의에 딴죽을 걸어 뒤로 자빠뜨릴 그런 힘 있는 시 돈을 잡아먹는 신나는 시를 쓰고 싶은 것이다 나의 시는, 어차피 돈과 시는 엇박자 궁합, 돈 앞에 탕탕 큰소리치고 싶은 것이다 나의 시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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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년간, 타향과 본향本鄕을 잇는 징검다리 문예지 『한솔문학』(제4호) 2020-12월 <국내초대시>에서
* 정대구/ 경기 화성 출생, 1972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칼이 되어』『만날 수 있을까』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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