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고봉준_ 근대의 바깥을 사유하는 한 가지...(발췌)/ 겨울 골짜기 :황규관

검지 정숙자 2021. 5. 16. 13:03

 

    겨울 골짜기

 

    황규관

 

 

  함박눈이 내리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고개를 씩씩 넘어가는

  기차를 타야겠습니다

  빨리 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가파른 생활이 지복입니다

  가버린 것들이 주먹만 한 눈송이로

  눈앞에 가득할 것입니다

  시간을 갈아탄 영혼에게

  다가오는 다른 세계이겠지요

  계곡은 더 깊어지고

  길은 언 물처럼 고요할 겁니다

  그 안에서 떠오르는 기억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닐 겁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흐르는 흰 강이거나

  산등성이를 올라가다 뒤돌아보는 

  혼자 남은 새끼 고라니의 눈빛이겠지요

  한시도 놓아본 적 없는 꿈이

  그리고 사랑이 어제의 나를

  자꾸 베어 넘깁니다

  영원히 미끄러져 나뒹굴게 합니다

  바리바리 싸온 것들을

  지나온 역처럼 놔버리라 합니다

  빈털터리가 되는 꿈을 따라

  녹아 흐르는 물이 되라 합니다

  처음 보는 들판을

  두리번두리번 흐르라 합니다

      -전문-

 

   근대의 바깥을 사유하는 한 가지 방식(발췌) _고봉준/ 문학평론가 

  "빨리 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가파른 생활"은 왜 '지복至福'일까? 그것은 고속열차의 속도에는, '바깥'을 괄호 안에 넣어버린 사람은 경험할 수 없는 세계, 즉 "시간을 갈아탄 영혼에게/ 다가오는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 세계에서는 "가버린 것들이 주먹만 한 눈송이로/ 눈앞에 가득"하고, "계곡은 더 깊어지고/ 길은 언 물처럼 고요"하다. 중요한 것은 이 세계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과 기억은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앞에서 인용한 표현을 반복하면, 그것은 이 고즈넉한 세계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이 세계의 소리를 듣기 위해 자신의 감각을 '바깥'을 향해 열어놓은 존재만이 경험할 수 있는 세계의 드러남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세계의 것도, 그리고 '나'의 것도 아니다. 그것을 가리켜 "떠오르는 기억"이라고 표현한다면, 이때 떠오름의 주체는 '기억' 자체일 뿐 '나'가 아니다. 우리는 종종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현듯 어떤 기억이, 혹은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잠을 자기 위해 불을 끄고 누웠다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불면의 밤을 보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생각'은 우리의 이성적 능력이 불러낸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이성理性은 다음날의 일상을 위해 서둘러 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은 이성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좀처럼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의 신체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라고 해서 그것의 주체가 '나'라고 주장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p. 시101-102/ 론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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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딩아돌하』 2021-봄(`58)호 <신작소시집/ 신작/ 작품론>에서

   * 황규관/ 전북 전주 출생, 1993년 전태일문학상 수상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패배는 나의 힘』『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등, 산문집『강을 버린 세계에서 살아가기』『문학이 필요한 시절』, 김수영을 읽고 쓴『리얼리스트 김수영』

   * 고봉준/ 부산 출생, 2000년⟪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 평론집『반대자의 윤리』『문학이후의 문학』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