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7회 '딩아돌하 우수작품상' 수상작>
숭고
김안
다리를 끌어본다 세워본다 다시
주저앉아 11월의 가득한 틈새들 사이로 쏟아지는
강철 햇살이 사람들의 발목을 자르는 풍경을 본다
나는 내게 멀리 있어서
아파트 한구석 자전거 보관소에서 나는 눅눅한 쇠 냄새 같은
녹거나 기화하는 썩는 계절이구나
몸은 이미 구석구석 시신이구나
낯선 시신을 눕히는 방식으로 나는 나를 멀찌감치 쓴다
당신은 너무 멀리 오셨습니다
나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군요
잠과 낮을 잃어버린 채
눈을 감는다 이렇게 어두울 수가 있다니
눈을 뜬다 이렇게 어두워야만 하다니
이 믿음이
이 증오가
마음의 선한 쓸모가 몸속 돌이 아닌 돌이 되어
제 아무리 씻겨도 문질러도 둥근 백골은 아니라서
어머니, 뜯어진 옷을 고치는 마음으로
끊겨진 발목을 끼우시는
들판의 돌을 깨부수는
그 뒷모습 너머로
뒷모습을 버티는 가는 발목 사이로
기문비나무가 시커멓고 뾰족한 잎사귀를 움켜쥐고
둥글고 짙은 그늘을 만들고 있다
그늘 구석구석 눈부신 발자국들 찍혀 있다
-전문, 『딩아돌하』 2020-겨울(57)호
▶ 그늘 속의 빛, 그늘의 빛(발췌) _신철규/시인
김안의 시와 언어에서 어떤 경계에 집요하게 머물러 있거나 가장자리에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을 받았다면, 그것을 우리는 '숭고'와 연결할 수 있다. 숭고는 상상력을 통한 순수한 출현이 일어나는 정지의 시간을 가리키는 동시에 탄성이 터져 나오는 감성의 폭발을 가리킨다. 그것은 인식할 수는 없고 사고만 할 수 있을 뿐인, 상상력의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초감성적인 것이며, 상상력의 자유가 희생(박탈)된 소극적인 흡족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물질적 쾌감과 감각적 향유를 넘어서는 경외감이 바로 숭고이다.2) 우리는 이러한 것을 웅대하고 거친, 그래서 길들여지지 않고 순화되지 않은, 다시 말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에서 느낄 때가 많다.3) 인간적인 지식이나 개념으로 표상할 수 없는 것, 인간의 인식에 의해 규정된 것 너머에 있는 것이 출현할 때 우리는 숭고를 느낀다. 숭고는 근원과 자신 간의 거리, 그리고 영원한 불멸과 일시적인 필멸의 차이에 의해 발생한다. 감각과 인식의 지평을 넘어서는 재현 불가능한 것, 그것의 절대적 크기(극대치)를 경험하는 것은 부분적인 포착은 가능하지만 총괄은 불가능한 상태에 다름 아니다.4) 아니나 다를까, 김안의 근작시 제목에서 우리는 결국 '숭고'와 마주하게 된다. (p. 시198-199/ 론 145)
2) "숭고한 감동이란 감각적인 것의 소멸에 대한 감각이다."(강조-원문) 장-뤽 낭시,「숭고한 봉헌」『숭고에 대하여』 86쪽, 감각의 소멸에 대한 감각
3) "거친 자연 속에 우리로 하여금 경외감이나 예찬, 또는 숭고에 대한 경탄을 느끼도록 만드는 계기가 있다면 그것은 그 자연의 실질성이 아니라 그런 모습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 곧 그것의 출현이다. (중략) 거친 자연의 웅대함이란 존재자의 한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출현자의 출현을 의미한다." 114쪽
4) 임마누엘 칸트, 『판단력 비판』, 백종현 옮김(아카넷, 2009) §26, 257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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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아돌하』 2021-봄(`58)호 <제7회 우수작품상/ 당선작>에서
* 김안/ 서울 출생, 2004년『현대시』로 등단, 시집『오빠생각』『미제레레』『아무는 밤』
* 신철규/ 경남 거창 출생, 2011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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