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잎의 역설/ 동길산

검지 정숙자 2021. 5. 12. 16:32

 

    잎의 역설

 

    동길산

 

 

  잎에게 빛은 생명수다

  빛이 스며들지 않으면

  시름시름 시들다 끝내 죽는다

  아프리카 어떤 나무는 그걸 알아서

  제 잎에 스스로 구멍을 내어

  빛이 그 아래 잎에 스며들도록 한다

  한 잎이 죽으면

  다른 잎이 사는 게 아니라

  한 잎이 죽으면

  다른 잎도 죽는

  잎의 역설이다

  아프리카 어떤 나무만 그러랴

  내가 이만큼이나 얼굴 들고 다니고

  이만큼이나 밥 먹고 살게 되기까지

  보이는 곳도

  보이지 않는 곳도

  구멍 숭숭 난 만신창이 당신

  나무 맨 위에 난 잎이라서

  가장 높고 가장 파릇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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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엠포엠』 2021-봄(89)호 <신작시>에서

   * 동길산/ 1960년 부산 출생, 1989년『지평』으로 등단, 시집『꽃이 지면 꽃만 슬프랴』외, 산문집『우두커니』외, 한국 신발 100년사『고무신에서 나이키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