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책은 나의 꽃/ 서지원

검지 정숙자 2021. 5. 14. 15:23

 

    책은 나의 꽃

 

    서지원/ 소설가

 

 

  어떤 사물을 만들어낸다거나 새로운 생명을 싹트게 하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나의 손 나의 머리로 하나의 예술품이 창조되고, 어떤 생각이 실마리를 잡고 물길을 연다면 그 또한 가슴 벅찬 일이다.

  봄날 꽃을 심어보자. 저 하늘의 별만큼 많은 꽃 중에 그 하나를 고르되 얼마나 아름다운 꽃인가는 굳이 따지지 말기로 하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에 우리 인간은 너나없이 취하지만 그 비교 우위에 서겠다는 인간의 심성으로 그 피어날 꽃을 기다리지 말고 그저 꽃 하나를 심어보자.

  그냥 생명 하나가 이 후덕한 땅, 따스한 햇살, 비바람과 눈보라의 도움으로 싹이 트고 떡잎이 나고 줄기가 흔들리며 자라나서 끝내는 그 자신의 모습을 우리 인간에게 보여준다는 신비함만으로 감사하고 기뻐하자.

  이규보李奎報 같은 문호는 노래하되, 꽃을 심을種花 때는 피지 않을까 걱정하고, 꽃이 피어서는 질 것을 시름하여 이래저래 근심만 주는 것이 꽃인지라, 꽃을 심는 즐거움을 모르겠노라未識種花樂 하였지만, 이는 꽃에 대한 지나친 기대요 자연에 대한 공연한 투정이 아닌가 한다. 생명체란 언젠가 소멸하기 마련이고, 어떤 경우에는 아예 싹조차 내밀지 못하거나 떡잎이 자라다가 어처구니없이 지고 꺾일 수도 있는 것이 자연현상이요 자연의 섭리이다. 당연한 것을 두고 걱정을 태산같이 하니 이래서 시인이란 본래 근심 많고 다사스러운 사람이 아닌가 한다. 그토록 걱정이 된다면 3천 평이나 되는 땅에 어떻게 꽃을 심는다는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

 

  二頃無多半種花이경무다반종화 이경의 밭이 많지는 않지만 반은 꽃을 심는다

 

  경을 우리는 이랑이라고 하지만 원래 중국의 측량 단위이다. 1경이 100묘, 약 3천 평이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과 6천 평 밭 중 절반을 꽃으로 덮겠다는 그 배포를 좋아하면서 이 글의 한 짝, 즉 대구對句가 무엇인지 무척 궁금하였다. 이런 멋진 글을 짓는 사람이니 어러마나 멋진 대를 했겠는가. 그리하여 3천 평의 꽃밭과 함께 어떤 황홀한 세계, 어떤 아름다운 시의 언어와 상상의 세계를 펼쳐 보였는지 못내 궁금하였던 것이다.

  자신의 영토 절반을 꽃으로 채우겠다는 시인이 우리에게도 없는 것은 아니다. 조선 초, 태재泰齋 유방선柳方善이란 분이 있다.

 

  낚시에서 돌아오는 길 해는 기울고/ 잔솔과 성긴 대숲 우거진 산골 집(텃밭이 있지만 생계가 달린 건 아니니)有園不是謀生計/ 반은 신선의 차, 반은 꽃을 심었노라半種仙茶半種花

 

  절반을 꽃으로 심는다茶半種는 것은 꽃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자 거창한 꽃밭의 창조이다. 그 사람의 마음 또한 무한히 넓고 아름답지 않겠는가. 화훼농가가 아니고서야 아무리 중국 대륙이라 한들 3천 평 밭을 꽃으로 덮게 하겠다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 생명에 대한 경외가 없으면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답답한 도시 협소한 집에서 평생을 보낸 나는 한 번도 꽃밭다운 꽃밭을 가져보지 못했다. 물론 꽃을 심는 것같이 심어보지도 못했다. 지금처럼 세 칸 아파트에 지친 심신을 뉘는 형편으로는 옛 시인의 그런 풍모를 눈여겨볼 겨를조차 없다. 삭막한 가슴 척박한 마음 가장자리에 그저 상상만 있을 뿐이다.

  한편 생각건대 내 처지가 그렇다손, 50년 동안 끝내 찾지 못하는 글의 대구를 이제는 내라도 그 빈 공간을 메워보자는 생각이 들기에 이르렀다. 꽃 대신에 나는 책, 나의 장서를 내놓고 싶은데, 현실 또한 꽃밭처럼 전혀 실재한 것이 아니고, 좀 꾀죄죄한 느낌이 없지 않으나 어차피 궁한 주대措大의 글이요 상상이니 그저 웃으며 들어주기 바란다. 한시의 대구로서 격에나 맞을는지······.

 

  삼간유애반가서三間有隘半架書 세 칸 집이 좁기는 하지만 반은 책을 꽂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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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의 집 · 서울』 2021-4월(234)호 <사물에게 말을 걸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