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 에세이 & 시>
음악가의 에피소드와 시
배홍배
에피소드)
두 사람의 슈베르트 이야기/ 세상엔 이름이 같아서 여러 에피소드를 남긴 유명인들이 있다. 독일 드레스덴의 궁정 음악가 프란츠 안톤 슈베르트와 오스트리아 빈의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이야기다. 안톤 슈베르트가 1827년에 69세로 세상을 떴고, 겨울 나그네로 유명한 페터 슈베르트는 31세로 1828년 요절했으므로 두 사람이 활동하던 시기가 같았다. 그리고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다리 하나를 두고 자유 왕래를 하던 터여서 두 음악가와 관련된 오해의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페터 슈베르트가 17세 되던 해 괴테의 시 「마왕」을 읽고 감명을 받아 곡을 붙여서 악보를 괴테와 라이프치히의 브라이코프 운트 헤르텔 출판사에 보낸다. 그러나 괴테는 무명의 슈베르트가 쓴 악보를 읽어보지도 않는다. 음악을 문학보다 한 수 아래의 것으로 생각하는 괴테는 베토벤마저 무시한다. 게다가 20여 살이 많은 보수적 성향의 괴테와 진보적 성향을 가진 베토벤은 만날 기회가 없었다. 괴테의 음악적 취향은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고전풍이었으므로 그에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베토벤 음악이 귀에 들릴 리가 없었다. 베토벤도 알아보지 못한 괴테에겐 작센 궁정악단의 무명 콘트라베이스 주자 안톤 슈베르트나, 17세의 소년 페터 슈베르트는 듣보잡에 불과했던 것이다. 괴테에게 퇴짜를 맞은 출판사는 악보를 드레스덴의 안톤 슈베르트에게 돌려보냈다. 이런 일로 「마왕」의 작곡자가 오스트리아가 아닌 독일의 슈베르트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후에 「마왕」이 알려지면서 헛 유명세에 짜증이 난 안톤 슈베르트는 프랑수와 슈베르트로 개명했다. ▩
시)
그때가 좋았네
- 베토벤의 바가텔
배홍배
잃어간다 점점 나 자신을 음악 속에
비명을 지르면 고요해지는 혼자 우리를 이야기했다
모르는 사람의 안심을 사기 위해
묻고 대답할 때
세상은 거울 속에서 안전했다
송내 대로 중앙선에 줄지어 선 검은 살구나무들
가지가 가리키는 기억의 향기를 향해
U턴하는 눈발, 눈발들을 보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백 년 전에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기
이 음악은 말하지 않아도 돼
말 속에서 나는 외롭지는 않을 거니까
꿈같은 엘레지의 비율로
기억과 경험이 버려지는 공기가 엷어져 갈 때
쓸모없이 가벼워져버린 관악 5중주보다 무거웠을까
여섯 개의 바가텔을 듣고 외로움에 잠기는 나무
만약 십 년을 돌아간다면
슬픔을 깨무는 입술에서도
꽃잎은 피고 져서 살구 알이 익을 때
살구보다 더 발간 그녀가 부르는
그때가 좋았네, 그때까지 다시 또 십 년을 약속할 수 있을까
-배홍배 시인의 음악 에세이 『classic 명곡 205』에서
-------------------
* 『시산맥』 2021-여름(46)호 <권두 에세이 & 시>에서
* 배홍배/ 1953년 전남 장흥 출생, 2000년『현대시』로 등단, 시집『바람의 색깔』
'에세이 한 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문규_자연으로 가는 길/ 너 하나만 보고 싶었다 : 나태주 (0) | 2021.05.25 |
---|---|
故 김점용 시인 추모글: 이름을 불러본다/ 정진혁 (0) | 2021.05.24 |
항아리부터 깨라/ 강기옥 (0) | 2021.05.18 |
책은 나의 꽃/ 서지원 (0) | 2021.05.14 |
오숙, 다섯 개의 내음/ 차유진 (0) | 2021.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