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불면증 환자들에게 바친다/ 이승하

검지 정숙자 2021. 5. 10. 02:46

 

    불면증 환자들에게 바친다

 

    이승하

 

 

  내 고통의 진원지에 네가 있다

  잠

  자고 싶은 잠, 잘 수 없는 잠, 네가 내 원수지

  밤이 깊어갈수록 정신은 갓 잡힌 물고기의 비늘처럼 반짝이고

 

  잠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았다

  술? 수면유도제? 목욕? 기도? 따뜻한 우유? 뜨거운 꿀물?

  책도 읽어 보고 수도 거꾸로 세어 보고······ 결국은

 

  바람이 된다 구르는 돌이 된다 쓸모없는 10원짜리 동전이 된다 잠을 안 자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곳이 천국이고 서너 시간만 자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곳이 연옥일 테지

 

  기도해도 너

  잠

  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

  꿈은 거의 언제나 악몽이고

  자다가 종아리에 쥐가 나

  소리 없이 비명을 내지르고

 

  전날 못 잤다면 다음 날에는 졸음이 와야 하는데

  졸음도 오지 않고 핏발 선 눈으로

  좀비라고 불리는 흡혈의 인간이 된다

  잠을 좀 자야지 사람이 될 텐데

 

  내 이 영혼을 팔아서라도

  쥐죽은 듯이

  깊은 너,

  잠잠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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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작』 2021-봄(75)호 <신작시>에서

  * 이승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생애를 낭송하다』, 평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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