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환자들에게 바친다
이승하
내 고통의 진원지에 네가 있다
잠
자고 싶은 잠, 잘 수 없는 잠, 네가 내 원수지
밤이 깊어갈수록 정신은 갓 잡힌 물고기의 비늘처럼 반짝이고
잠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았다
술? 수면유도제? 목욕? 기도? 따뜻한 우유? 뜨거운 꿀물?
책도 읽어 보고 수도 거꾸로 세어 보고······ 결국은
바람이 된다 구르는 돌이 된다 쓸모없는 10원짜리 동전이 된다 잠을 안 자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곳이 천국이고 서너 시간만 자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곳이 연옥일 테지
기도해도 너
잠
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
꿈은 거의 언제나 악몽이고
자다가 종아리에 쥐가 나
소리 없이 비명을 내지르고
전날 못 잤다면 다음 날에는 졸음이 와야 하는데
졸음도 오지 않고 핏발 선 눈으로
좀비라고 불리는 흡혈의 인간이 된다
잠을 좀 자야지 사람이 될 텐데
내 이 영혼을 팔아서라도
쥐죽은 듯이
깊은 너,
잠잠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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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2021-봄(75)호 <신작시>에서
* 이승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생애를 낭송하다』, 평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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