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못의 대화/ 김예강

검지 정숙자 2021. 5. 12. 16:24

 

    못의 대화

 

    김예강

 

 

  나는 언덕 위 나부끼는 한 그루 나무를 액자라고 부릅니다

  편백나무 향이 묻어나는 액자는 건들거리며 벽에 걸지요

 

  나부끼는 새는 겨울나무의 잎이 되거라

  나부끼는 나뭇가지에 앉아 포릇한 잎이 돋거라

 

  그러면서 탕 탕 탕

 

  기차는 달려요 정면의 의자라고 부르는 바람은 나를 태우고

  미지의 세계로 가요

  뒤가 돌아다 보이지 않는 의자는 나를 태우고

  웃는 얼굴들이 가득찬 역을 향해 가요

  기차에 오르는 사진 속의 얼굴들

  왜 웃고만 있는지요

 

  그 길에 들자 내가 달려온 속도를 잃고

  나는 멈춰 섰지요

  사각의 액자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길에 밀착해서 천천히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다음의 생인지도 모르겠어요

 

  햇살 속에서 내가 벗어놓은 옷들은

  깃털처럼 날렸어요 누가 나눠 가진 걸까요

 

  손가락 끝은 늘 간지럽습니다

  숲을 찢고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

  주먹 쥔 손을 펴 봅니다 하얀 목련이 주먹을 쥐고 서 있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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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엠포엠』 2021-봄(89)호 <시인을 만나다 71>에서

  * 김예강/ 2005년『시와사상』으로 등단, 시집『고양이의 잠』『오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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