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검은 목련/ 박성현

검지 정숙자 2021. 5. 11. 00:27

 

    검은 목련

 

    박성현

 

 

  볕이 잘 드는 가지마다 목련이 피었습니다 희고 간결한 꽃잎에는 새들이 깃들어 살고 있었습니다 아직 외투를 벗지 못한 몽우리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새들을 기다렸습니다 통영에서 사랑도까지 멀리 돌아갔습니다 뱃머리에 앉아 있으니 내 속에 살던 새들이 궁금해졌습니다 너무 오래 말을 닫아 희미하거나 메마른 채 어두워졌을 것입니다 당신이 말했습니다, 어떤 목련은 새들이 떠나자마자 시커멓게 타버린다고 아직 내 몸에 새들이 남아 있으니 숨 쉬는 게 마냥 새삼스러웠습니다 나는 새들을 찾지 않았습니다 새들이 떠날 날도 묻지 않았습니다

    -전문-

 

  시작노트> 사월에서 구월까지 눈이 내렸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아 하늘이 무너진 줄 알았습니다 당신이 그랬거니 싶어 채근할 요량으로 한달음 뛰어갔습니다 당신 없는 숲과 언덕에는 정체 모를 소리와 얼룩과 구석이 뒤엉켜 있었습니다 당신의 부재 속으로 눈이 내려 쌓였습니다 냄새와 온기를 버려두고 폭설로 들어간 당신에게, 칼바람이 미칠 듯 그어대기를 바랐습니다 만신창이로 목초지에 처벅혀 썩어가기를 간신히 머리만 남아 미라가 되기를 눈이 쌓여 얼어붙은 숲과 언덕에는 짙은 박하 냄새가 났습니다 사월에서 구월까지 박하를 씹으며 당신을 지워버린 눈보라를 걸었습니다 발자국마다 얼음이 녹아 호수로 변했습니다 달빛이 하도 밝아 깨었습니다 한밤중의 당신도 달빛을 마중하는 듯 베란다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곁에 앉아 당신 눈을 들여다봤습니다 흰 눈이 맹렬하게 날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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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1-4월(376)호 <신작특집>에서

  * 박성현/ 2009년『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