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서, 가볍지 않은 생각
김금용
포크레인이 무덤을 부순다
흙이 순식간에 퍼올려지고
탈관하자 살과 구별 없이 까맣게 엉킨
어깨뼈 정강이뼈가 올라온다
키켈의 편지를 노래하는 소프라노 성악가의 허밍처럼
소리는 있되 언어를 벗어난 외침이 바람을 타고 출렁인다
무덤가의 햇살과 나뭇잎들도 흐미를 내뱉는다
죽음은 가벼워
장미 향기가 넘칠 때, 참외가 무르익을 때
벚꽃잎이 나비보다 더 가볍게 날아오를 때
내 생도 가볍기를 바랬지만
백만 번쯤 웃으면
돌멩이도 푸른 이끼를 피워낸다고
그도 손들고 내가 꽃이야 외칠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죽음은 삼베수의 한 벌만 걸치고 내 곁을 지나
골목길 고랑길 산길 마다않고 바람만 끌고 지나
불길도 마다않고 걸어 걸어 들어가
구름나라에서 가부좌 틀고 벚꽃을 날린다
눈이 오는 한 계절이 지나도록
내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돌멩이
떠난 이들은 냄새도 자취도 없는데
푸른 이끼가 나올까말까
죽음이 생보다 진짜 가벼울까
-전문-
▶ 생각의 재탄생(발췌) _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시인은 이장하기 위해 파헤친 무덤과 거기에서 나온 유골을 보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유골을 보면서 시인은 바람과 햇살과 나뭇잎과 같은 자연물들이 함께 "허밍처럼" 몽고의 초원에서 들려오는 "흐미를 내뱉는다"고 느낀다. 죽음이 삶의 무게를 털고 가벼워지고 있는 것 같은 순간이다. 하지만 시인은 정말 죽음이 가벼울까, 라는 의문을 가진다. 죽음까지 가게 된 시간의 깊이와 그 시간을 통해 겪은 삶의 무게를 쉽게 지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기에는 가벼워진 죽음의 모습을 보고도 "한 계절이 지나도록/ 내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돌멩이"라는 감각적인 표현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시인은 이런 사유를 통해 삶도 죽음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어떤 엄숙함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우리는 이 삶을, 정말 진지하게 성찰하면서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p. 시 196-197/ 론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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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1-봄(81)호 <신작소시집_신작시/작품론>에서
* 김금용/ 1997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광화문쟈콥』『핏줄은 따스하다, 아프다』등, 번역시집『문혁이 낳은 중국 현대시』『오늘 그리고 내일』
* 황정산/ 1993년『창작과비평』으로 평론활동 시작, 2002년『정신과 표현』으로 작품활동 시작, 저서『주변에서 글쓰기』『쉽게 쓴 문학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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