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일지
- 눈
박수현
함박눈이 내린다 E병원 111병동 10호실, 회색 철제 침대 머리에 꽂힌 이름표처럼 철심을 박은 왼쪽 무릎을 높다랗게 고인 내 몸 위로 펑펑 쏟아지는 눈송이들 꼬리가 아홉인 은여우의 춤에 홀려 나는 크레바스가 사납게 입을 벌린 눈밭을 지나 빙벽을 오른다 고사목 둥치 같은 석고 깁스 안쪽, 피멍울 자욱한 뼛속으로 날 선 얼음 톱니바퀴들이 저릿저릿 굴러다닌다 간호사가 하루 4번 부실한 내 신체의 재질을 점검할 때마다 낡은 영혼의 속창까지 다 드러날까 팔목에 묶인 13853868 환자 팔찌는 파르르 긴장을 한다
싯푸르게 웃자란 통증들이 치한처럼 다가와 와락 내 목덜미를 조인다 놈의 억센 손아귀에 잡힌 긴 하루가 헝클어진 머리채를 출렁이며 가팔라진 숨을 내쉰다 창밖 막 불이 켜진 십자가 아래, 늘어선 차들은 개처럼 컹컹 짖으며 충혈된 눈동자를 부라린다 살면서 배운 가장 욕심 없는 기도를 올렸건만* 신은 멀찌감치 서서 흰 홋자락만 펄럭였다 병실 벽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을 북 찢어내듯 마른 뼈들을 눈 덮인 거리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제본되지 않는 통점들을 흰 붕대로 휘감아보겠다는 듯 짙은 눈발은 오래 그치지 않았다
-전문-
* 김남조의 「목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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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1-봄(81)호 <신작시>에서
* 박수현/ 2003년『시안』으로 등단, 시집『운문호 붕어찜』『복사뼈를 만지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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