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책 한 권
신달자
어느 칸이라도 자유다. 어느 칸이라도 무료다. 어느 칸이라도 내 의자가 있다. 나는 어디에서 내려도 상관없다. 지하철은 독서실이다. 어둠과 햇살이 뒤섞인 청춘과 노인이 뒤섞인 이 독서실은 백색소리 속으로 빠져드는 책의 요람이다. 독서는 늘 절정에 도달한다. 안방 내 책상에서보다 더더욱 집중력이 최대치에 달한다. 나는 책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책 속에서 생을 살다가 두루두루 살다가 내가 내려야 하는 역에서 책 밖으로 나온다.
책에서 나왔는데도 나는 계단을 올라도 책 속이고 길 위에 나와 햇살을 걸어도 책 속이다. 내가 책이 되어 있는 시간을 잘 접어 핸드백 속에 넣고 강의를 위한 강단 위에 오른다.
책들이 내 앞에 주욱 앉아있다.
-전문-
▶근원과 사랑과 문화, 그리고 생명(발췌)_김미연/시인, 문학평론가
시인은 지하철 속에서도 자유자재 책읽기에 삼매경이다. 최대치의 집중력을 쏟는다. 시인과 책이 하나이고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다. 생이 장소를 불문하고 책과의 일체감으로 흐른다. 그런데 마지막 행을 눈여겨보자. "나와 책의 동일 시간대를 접어 핸드백 속에 넣고 강단에 서면 책들이 그 연단 아래 주욱 앉아있다"는 것이다. 표현만 보아도 장관이다. 글말(책)이 입말(강연)을 위해 연단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 그것이 어찌 장관이 아니겠는가.
신달자 시인은 입말과 글말이 일체로 가는 화술의 경영자이고 국어의 읽기와 쓰기가 동일체로 함께 실현되는 네 가지 영역 경영자이다. 그런데도 그는 시간에 허기지고 있다. 시간 욕심이 많고 말을 부려 쓰는 일에 갈증이 유다른 시인으로 읽힌다. 그의 일생은 책이 일상이고 일상이 책인 전면 텍스트라는 점이 이를 말햐주고 있다. (p. 시 108/ 론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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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1-봄(81)호 <현대시인열전 ⑦ 신달자 편>에서
* 김미연/ 2015년『월간문학』으로 문학평론 & 2018년『월간문학』으로 시조 등단, 시집『절반의 목요일』, 평론집『문효치 시의 이미지와 서정의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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