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감염/ 채선

검지 정숙자 2021. 5. 4. 02:52

 

    감염

 

    채선

 

 

  그곳에서의 계절은 도무지 바뀌지 않았다.

 

  새벽이

  충혈된 잠을 흔들어 깨웠다.

  바깥세상은 침묵에 몰두하는 때였다.

 

  시차를 지나온 역병이 지붕마다 자욱했다.

 

  새벽에 도착한 안부는

  상상 가능한 오해와 왜곡으로 갈라져 있어

 

  그것이 무엇이건

  돌연 굳센 믿음이 깨지고 사라지는 비극에 대한

  의심의 꼬리가 꼬리를 문다는 사실을 새벽마다 깨달았다.

 

  계절이 멈춰선 거리

 

  모든 거리는 점점 휑해져

  거리와 거리는 거리에서, 멀리멀리, 더 멀리, 멀어졌다.

 

  나는 한동안 고된 눈을 감고 더듬더듬 지냈다.

  지팡이도 없이

  눈동자만 남은 사람들 길게 줄을 서고

  하염없이 순번을 기다렸다.

 

  누군가는 차례가 오기 전에 죽었다. 급작스러운 죽음 뒤

  방역차들 줄지어 몰려와 장례를 대신했다.

 

  울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이 다른 계절을 기다렸는지는 모를 일이다.

 

  세상 사람들 그렇게 두렵고 슬픈 일상을 채워나가는 동안

 

  체온을 잊었으나 멀리서도 잘 보이던 곳,

  나는 비로소

  긴 대기자의 행렬에서 격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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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1-봄(81)호 <신작시>에서

   * 채선/ 2003년『시사사』로 등단, 시집『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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