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
김이듬
3주 뒤에 그녀는 떠올랐다
다리 근처에서 아이들이 시신을 발견하였다
그녀의 애인은 말했다
바다로 떠밀려 가기를 바랐다고
강을 따라 걷지 않았다
길은 찾지 않아도 길이 많았다
일요일이라서 떠나지 않았다
이마를 기울인 몽상가처럼
기울어가는 책방에서 비를 보았다
넌 누구와도 사흘을 못 살 사람이야
애인이 아닌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숨이 멎을 듯한 아름다움은 뭘까
부력은 충분했고
나는 잠기지 않았다
눈은 감겨야 쓸모 있는데
잠기는 힘이 사라진 것처럼
눈에 띄지 않으려면 살아 있어야 할까
나는 시체라서 자꾸 떠오르고
누구와 하루도 사라지지 못했다
-전문-
▶흐르는 피가 아닌 흘린 피로 자매가 된다면_김이듬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현대문학, 2019)(발췌)_성현아/문학평론가
이 시에는 애인에게 죽임을 당한 "그녀"가 책방에서 비를 보고 있던 "나"로 겹쳐지는, 갑작스러운 비약이 있다. 이러한 비약은 "나"가 번번이 요구되는 아름다움을 갖추지 못하면 언제든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마는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며 발생한다. "눈에 띄지 않으려면", 즉 표적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생존해야 하지만 "나"는 이미 죽은 여자와 같은 "시체" 신세이기에 "누구와 하루도 사라지지 못"한다. 이는 같은 음운을 갖는 반대말이자 자신이 들었던 욕설인 '누구와도 살아내지 못함'을 변형한 말이다. '나'의 이야기는 언제든 폭력의 대상이 되는 여성들의 이야기로 전환되므로 이 비약은 여성 개인의 이야기가 젠더 정치적으로 처리될 수 있도록 하는 도약이 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적인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것은 다시금 여성들 모두의 이야기가 되고 쉽게 공감 가능해진다.
여성의 경우 자신의 몸을 주체보다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더 많으며, 이는 여성에게 부과되어온 훈련에서 기인한다(김미라,『몸, 주체, 권력(메를로 퐁티와 푸코의 몸 개념)』(이학사, 2011. 216쪽). 그렇다면 여성의 신체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로부터 받아온 훈련에 의해 내부에서 습관을 형성하고 그것이 다시 외부로 발현되는 양상을 띤다는 말이다. 여성의 신체적 실존은 이토록 복잡하고 규명하기 힘들다. 다만 피를 흘린 여성들이 그 피를 통해 자신의 신체를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갖게 되는 미묘한 감각으로 다른 여성들과 가족보다 끈끈한 새로운 혈연을 생성한다는 이야기를 해볼 수 있다. (p. 시 77-78/ 론 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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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시학』 2021-봄(98)호 <한국의 대표 시인 특집/ 작품론>에서
* 김이듬/ 경남 진주 출생, 2001년『포에지』로 등단, 시집 『히스테리아』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등, 장편소설『블러드 시스터즈』, 산문집『모든 국적의 친구』『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등, 연구서적『한국현대페미니즘 시연구』
* 성현아/ 2021년 ⟪경향신문⟫ &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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