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여드레 만에 집을 나서니/ 황동규

검지 정숙자 2021. 4. 28. 13:14

 

    여드레 만에 집을 나서니

 

    황동규

 

 

  코로나 집콕하다 여드레 만에 집을 나서니

  눈 가늘게 뿌린 땅에 거대한 영지버섯처럼 붙어 있는 

  맨홀 뚜껑부터 반갑나

  흑백 마름 옷 차려입고 깔끔하게 걸어다니는

  까치도 반갑다.

  별생각 없이도 즐겁게 오르내린 서달산하고는

  눈인사를 하자.

  어제는 후배가 아내를 잃었다는 문자를 받고

  전화로 봉투 부탁만 하고 말았지.

  오늘 아침 나갈까 말까 몇 번 재보다

  마스크 꺼내 쓰고 집을 나선 내가 반갑다.

  하늘에선 구름 하나가

  햇살 속에 절묘하게 입과 혀를 만들고 있다.

  그의 어떤 이야긴들 반갑지 않으랴.

  모르는 사이에 버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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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의 집 · 서울』 2021-3월(233)호 / 권두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