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드레 만에 집을 나서니
황동규
코로나 집콕하다 여드레 만에 집을 나서니
눈 가늘게 뿌린 땅에 거대한 영지버섯처럼 붙어 있는
맨홀 뚜껑부터 반갑나
흑백 마름 옷 차려입고 깔끔하게 걸어다니는
까치도 반갑다.
별생각 없이도 즐겁게 오르내린 서달산하고는
눈인사를 하자.
어제는 후배가 아내를 잃었다는 문자를 받고
전화로 봉투 부탁만 하고 말았지.
오늘 아침 나갈까 말까 몇 번 재보다
마스크 꺼내 쓰고 집을 나선 내가 반갑다.
하늘에선 구름 하나가
햇살 속에 절묘하게 입과 혀를 만들고 있다.
그의 어떤 이야긴들 반갑지 않으랴.
모르는 사이에 버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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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집 · 서울』 2021-3월(233)호 / 권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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