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닮아간다는 것
김옥종
어제도 너를 보내준 꽃무릇 길로 돌아오는 길에 하루에 한 번씩은
헤어짐을 준비해온 터라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은 없을 거라고
촉촉이 젖어있는 어둠에 볼을 비벼댄다
서로에게 가까이 가는 길은 너무 힘들어
배롱나무 꽃이 져버린 달력을 넘기며
어둑한 밤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표정 없는 얼굴을 하고서 네 지친 그림자를 떠올리면
우리가 닮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두려움인지
우리가 닮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슬픔인지
사방은 어둡고 다다를 수 없는 너는
파도로 살아나
가슴으로만
그 여린 가슴으로만 무너져 내리는데
눈물 한 방울 없이
거칠게 잊어 줄 것 같은 계절에
앞서 떠난 바람이 대숲을 흔들던 날에도
서로 다른 부위의 상처가
누구의 심장에도 박히지 못한 침엽수로 떠돌고 있었으니
우리가 닮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두려움인지
우리가 닮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슬픔인지
-전문-
▶ 바다에서 체화된 삶의 절실한 언어들_김옥종의 시(발췌) _ 박철영/ 시인, 문학평론가
영장류에 속하지만, 인간도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리 앞에서는 왜소해진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듯이 사람도 매번 생각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루를 평생처럼 연장하며 살아가고픈 인간의 욕망을 '현재'라는 시점을 경계로 볼 때 '어제'라는 시간도 엄연한 과거(피안)의 세계임을 깨닫게 된다. 엄연한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서야 인간이 갖는 욕망의 임계치臨界値를 깨닫게 괸다. 그 마지노선을 넘으면 되돌아올 수 없는 내일이라는 미래(차안)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부단한 자기반성의 시간을 통해 죽음 이전에 세상의 순리에 다가가려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궁극이다. "어제도 너를 보내준 꽃무릇 길로 돌아오는 길에 하루에 한 번씩은/ 헤어짐을 준비해 온 터라"라며 비장한 각오가 있었다는 것이다. 화자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별이란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해도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은 없을 거라고/ 촉촉이 젖어있는 어둠에 볼을 비벼 댄다"는 안타까움에 묻어나는 그리움이 짙다. 채 하루를 넘기지 못한 이별의 후유증이 통증을 더해 아픔으로 환원되고 만다. 이제는 함께 걸을 수 없는 '꽃무릇 길'을 혼자서 감내하며 걸어야만 한다. 이별의 결말은 슬픔을 힝태한 채 화자의 몫으로 떠념겨지고 말았지만, 남은 자의 몫을 떠난 사람의 밟고간 행로를 답습하며 실행해야 한다. 단신으로 남아 함께 했던 정인情人과의 시간을 떠올리며 서로가 달랐던 순간들의 부질없었음을 깨닫는 시간의 후회와 더불어 온다. 그 사람을 떠나보낸 뒤이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배롱나무 꽃이 져버린 달력을 넘기"지만, 변한 것은 "우리가 닮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두려움인지? 우리가 닮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슬픔인"를 절망과 무상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것뿐이다. (p. 시 223/ 론 234-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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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사람』 2021-봄(99)호 <신작소시집_김옥종/ 신작시. 시론> 에서
* 김옥종/ 2015년『시와경계』로 등단, 시집『민어의 노래』, 한국인 최초 K-1 이종 격투기 선수
* 박철영/ 2002년『현대시문학』으로 시 부문 & 2016년『인간과 문학』으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비 오는 날이면 빗방울로 다시 일어서고 싶다』『꽃을 전정하다』등, 산문집『식정리 1961』, 평론집『해체와 순응의 시학』등, 전자북 평론 서적 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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