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하지 못한 마음
박상수
한 사람에게 다하지 못한 마음, 다했음에도 더하고 싶은 어떤 마음, 같이 걷고 있어도 어떻게 그런 것만 떠오르지 손가락 하나로 번갈아 건반을 누르듯 우리 같이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서, 봄빛 잘 구워진 기와지붕들을 내려다보지 맨날 뒤로 미루었던 것들을 이제 하나씩 해 봐도 괜찮을까? 더할 수 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 그 사람이 여기 있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그만 몸에 힘이 풀려 영영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너를 기다릴 것 같아, 멋대로 돌아다니다가 지하철을 같이 탈 수 있다는 것,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마음에 담으며, 그 사람들이 전부 집에 돌아가 포옹을 받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작은 식탁에 앉아 있는 저녁을 꿈꾸는 지금, 처음 있는 이런 마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어떤 마음, 어떻게 우리는 이럴 수가 있어서, 교각 밑을 출렁이는 저 많은 빛이 잠시 우리 것이라고 믿어보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을까, 좋아해요, 라는 말이 떨리면서 흘러나오는 순간을 더할 수 없는 기분으로 좋아해요 꽉 차올라서 더 채울 게 없는데도 채우지 못한 것 같은 이런 이상한 슬픔과 빛, 소금과 허브로 잘 절여두었다가 건조시킨 후에 배어나오도록, 우리 두 사람에서 시작해 우리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반짝이며 풍기도록, 양손을 활짝 펼쳐서 서로를 기다려주는 사람, 한 사람이 품에 들어오면 다른 한 사람이 날개뼈를 잡아 한 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녹아버리는 마음, 바람이 세서 피크닉은 어려울 것 같은 날에도 키 큰 나무 밑에서 눈을 감고 같이 누워 있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흩어지는 머리칼을 서로 정돈해주며 웃어보는 우리가 되자, 저릿해진 서로의 심장을 손바닥으로 다독이면 우리의 시간은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나무 계단, 올라가도 올라가도 영원히 끝을 알 수 없는 궤적으로 시간은 우리를 휘감아오르고, 채널이 다른 라디오가 들려오고, 오후 4시의 빨래 마른 냄새 같은 너와, 차가운 보리차를 빈티지 유리컵에 담아 한 모금씩 나누어 먹는 우리, 너에게 나는 다하지 못한 마음, 꽉 차올랐지만 더 채울 수 없어서 슬픈, 우린 절대 없는 것으로 서로를 그리워하지 말자, 없는 사람, 없는 마음, 평생 그것을 생각하며 뒤에 남는 사람이 되지 않기로 하자, 한 사람에게 다하지 못한 마음, 다했는데도 끝내 그리워지는 이 마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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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지션』 2021-봄(33)호 <POSITION · 4/ 신작시> 에서
* 박상수/ 2000년 『동서문학』으로 시 부문 & 2004년 『현대문학』으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 『후르츠 캔디 버스』 『숙녀의 기분』 『오늘 같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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