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이순희

검지 정숙자 2021. 4. 19. 02:11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이순희

 

 

  70대로 보이는 부부

  유모차 밀며 산책을 한다

  손주를 태웠나 봤더니

  개 팔자보다 귀한 금수저 물고

  고양이 한 마리 누워있다

 

  공원 잔디밭

  한 무리 비둘기 떼가 그림 같다

  무슨 심통이 났을까

  누가 말려볼 새도 없이

  유모차에서 뛰어내린 집냥이

  풀밭을 내달린다

 

  한가롭게 누리던 화평

  불청객으로 박살이 난다

  비둘기 떼 초토화시킨 냥이를

  노부부는 손주 놀이 보듯 한다

  다정이 줄줄이 묻어 있다

  비둘기 떼가 잃어버린 평화쯤이야

  안중에도 없다

 

  그렇게 잔디광장 몇 바퀴 돌더니

  냥이에게 한마디 한다

  아가야, 돌아가자

  집으로

 

  쫓겨난 비둘기 떼 어디로 숨었는지

  공원은 쥐 죽은 듯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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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지션』 2021-봄(33)호 <POSITION · 4/ 신작시> 에서

   * 이순희/ 2002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꽃보다 잎으로 남아』, 가곡 독집 『어디로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