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사람은 없었다
안주철
다시 폐가 앞에 서있다면 마지막에 도착한 것이다
죽기도 전에
내 욕망을 흔들어서 그 모양을 확인하기도 전에
결국 이 모양 이 꼴로 남의 집 마당에 주저앉아서
예상하고 있는 생의 끝
이게 내 수준이고 이게 내가 마지막 놓을 벽돌일까?
구멍 난 양말을 꿰매고 양말을 신는다
버려야 하지만
엄지발가락 끝과 발뒤꿈치가 그물에 걸린 느낌
낯익은 이 느낌
이런 느낌이 잠깐 나이게 한다
오래전에 터진 거품이지만
밤이 한 마리씩 풀어놓은 어둠이 가득해지면
이름을 붙여줄 것이다
시커멓고 커다란 이름을
그동안 잘 지냈어? 어떤 인사는 고백에 가깝다
늘 보고 싶었어 진심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혼자 집에서 말하는 연습을 한다
무릎을 치면서 크게 웃으면 내가 되지만
작은 웃으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어도 내가 된다
이런 착각으로 간신히 버티는 생
이제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생각을 사랑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혼자 즐긴 내 생각
내가 정교하게 깎아온 망상들
내가 깎은 관의 모양을 왜 내가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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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지션』 2021-봄(33)호 <POSITION · 4/ 신작시> 에서
* 안주철/ 2002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 『다음 생에 할 일들』 『불안할 때만 나는 살아 있다』 『느낌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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