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악몽이 발견되었다/ 박민서

검지 정숙자 2021. 4. 11. 15:43

 

    악몽이 발견되었다

 

    박민서

 

 

  갑자기 생긴 주름은 그림자의 무덤

  심장에서 황톳물 뱉어내는 소리가 들린다

  울먹한 표정의 생생한 얼굴 하나가

  내 얼굴을 따라다닌다

 

  악몽이 발견되었다

 

  휘어져 오는 바람이 손에 잡히지 않아

  무작정 바람을 꺾었다

  보이지 않는 온도는 누구의 이름인지

  너의 손에 가려진 여러 개의 가명들

 

  이름 너머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

  웃거나 울 때는 숨어야 할 표정이 없다

  옛날 얼굴을 버리는 것은

  불안을 화석처럼 덮어버리는 일

 

  내 얼굴을 쓰다듬다 보면

  오래 잊고 있었던 바명이 되살아난다

  더럽혀진 숫자가 기억 날 때

  날벌레들이 바람에 몰려다닐 때

  다정하지 못한 먹구름이 갈라지는 소리를 듣는다

 

  옛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얼굴 속으로 모두 숨어버린 탓

  사진처럼, 옛말하는 인사처럼, 돌아오지 않는 표정들

  난 누구하고 살았을까

  충혈된 망막에는 어떤 얼굴도 없다

    

   ---------------

   * 『문학과사람』 2021-봄(9)호 <poem & poetry>에서

   * 박민서/ 1968년 해남 출생, 2019년 『시산맥』으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꽃/ 김규화  (0) 2021.04.15
박새 날다/ 정겸  (0) 2021.04.11
점토인형/ 진혜진  (0) 2021.04.11
그 말/ 권상진  (0) 2021.04.11
새옹지마/ 최금진  (0) 2021.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