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옹지마
최금진
변방에 사는 늙은이에게 말 따위가 있을 리 없습니다
말에서 떨어져 다친 아들 따위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늙은이는 종일 말을 기다리고 전쟁에 나간 아들을 기다립니다
숲으로 걸어가 제 목을 나무에 묶고 말 울음을 내면서
제 엉덩이를 걷어차는 시늉을 하다 보면
가끔은 나무들이 말굽 소리를 내며 저녁 들판으로 달려 나가고
마두금을 켜는 사람이 걸어와 늙은이의 얼굴에 활을 대고 쓱쓱 문지르며
안 보이는 시력을 먼 나라에 이어붙입니다
이대로 변방이 흘러가는 겁니다
이대로 변방은 흐려지는 겁니다
변방에 사는 늙은이에게 말이 말 떼를 몰고 돌아올 리 없습니다
없는 말이 고삐에 제 목을 묶고 푸르륵 더운 입김을 뱉을 리 없습니다
늙은이의 몸에 올라탄 늙은이의 몸
늙은이의 외양간에 제 몸을 눕히고
유리창만 한 이빨로 저무는 풍경을 자꾸 씹어 봅니다
멀리 변방에서 난이 일어나 오랑캐 서넛을 붙잡아 데려왔으나
전쟁이 있을 리 없습니다
오랑캐가 있을 리 없습니다
아무리 심문하고 추궁을 해도
거기 사는 늙은이를 보았다는 사람이 있을 리 없습니다
아무도 없는 들판에, 형체 없는 말들이 저렇게 넋놓고 울어도
말이 있을 리 없습니다, 기다리는 슬픔 따위가 있을 리 없습니다
당신이 그걸 모를 리 없습니다
-전문-
◈ 꿈과 현실로서의 (초)현실주의 시(발췌)- 최금진/ 시인
초현실주의적 시 창작 방법에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 轉置, 전위법)'과 '오토마티즘(Automatism, 自動記述法)'이 있다. 데페이즈망은 원래 나라나 정든 고장을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초현실주의에서는 어떤 물체를 본래 있던 곳에서 떼어내는 것을 가리킨다. 데페이즈망은,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인 로트레아몽(Lautreamont)의 유명한 시 구절 "재봉틀과 박쥐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듯"이란 표현에서 잘 나타난다.
낯익은 물체를 그것이 놓여 있는 본래의 일상적인 질서에서 떼내어 뜻하지 않은 장소에 놓으면, 보는 사람에게 심리적인 충격을 주게 된다. 이러한 원리에 의해서 초현실주의자들은 꿈속에서만 볼 수 있는 화면을 구성했는데, 초현실주의에 의하면, 이런 그림이 보는 사람의 마음속 깊이 잠재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독자의 무의식을 해방시켜 준다는 것은 독자에게도 유용하다. 그것은 열린 세계로 나아가는 자유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p. 시 96-97/ 론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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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사람』 2021-봄(9)호 <Poetics & poem> 에서
* 최금진/ 1970년 충북 제천 출생, 200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새들의 역사』 『사랑도 없이 개미귀신』등, 산문집 『나무 위에 새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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