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기적인 기억/ 문계봉

검지 정숙자 2021. 4. 10. 12:56

 

    이기적인 기억

 

    문계봉

 

 

  그 여름 내내 아버지는 시든 꽃이었다 비와 바람 속에서 눈치도 없이 알몸을 드러내던 시든 꽃의 살림들 집 없는 아버지는 천사가 아니었다 본 적 없어도 들은 적 있는 행복을 위해 아버진, 얘야 난 개미가 될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단다, 자주 말했지만 개미처럼 일하는 걸 본 적은 없다 그 탓에 여름은 가족 모두에게 공평하게 모질었다 어렸지만 나는 시든 아버지의 꿈을 묻은 한 평의 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샐비어꽃 꽁무니를 빨며 생각했다 꽃이 필 때도 꽃이 질 때도 맨날 개미가 될 준비만 하던 아버지 몇 차례 더 많은 비가 내렸고 센 바람도 불었던 그 여름 내내 시든 꽃은 굽은 목을 펴지 못했다 일찍 철이 든 나는 절망의 질긴 뿌리를 삘기처럼 질겅질겅 씹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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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들』 2020-겨울(75)호 <시> 에서

   * 문계봉/ 1995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너무 늦은 연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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