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터마임
기혁
사람들 사이에
선을 그으며 살아왔다
안쪽에서 볼 때 그것은 세상의
성곽 같았고
바깥쪽에서 보면 마임 배우가 기대고 있는
가상의 유리벽 같았다
한번 그어진 선은
밟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지만 감정의 안쪽으로 움직이는 동안
죽죽 그어진 생활이
더 많은 불안과 경계를 부추기고 있었다
때때로 새로운 선을 긋고
기존의 선들이 키워 낸 모서리들을
슬프게 바라보았다
모서리만 남은 인격을 참을 수 없어 떠나버린 친구
품에 안고 바라보다 보이지 않는
상처를 입은 연인도 있었다
부모와 형제마저 숨죽여
그들의 안부를 궁리할 무렵
매일 배우가 기대고 있는 저 유리벽이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서리의 궤적만이 빛나는 고립을
별빛이라 부를 때
사람들은 행운과 인연의 초상화 대신
자신의 동공에 몇 개의 별빛을 붙여 놓는다
무수한 선들이 퇴적된 밤하늘을 잊어버리고
부끄러운 이의 설렘과
떠나간 이의 순수를 제 것처럼 이야기하다 마침내
마지막 무게 중심을 모조리
타인을 향해 쏟아버리면
유리벽의 낭만은 조각난 흉기가 되어 날을 세운다
말 없는 웃음에도 슬픔이 있어 몸을 떠는가
사랑은 온몸의 근육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독해지는 것
생활의 중력을 거슬러 불가능한 미래를
능청스럽게 내디딘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별빛의 눈을 뜨고
다시,
당신의 모서리에 모서리를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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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1-2월(374)호 <현대시작품상 본심 추천작 3/ 기혁>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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