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팬터마임/ 기혁

검지 정숙자 2021. 4. 8. 12:13

 

    팬터마임

 

    기혁

 

 

  사람들 사이에

  선을 그으며 살아왔다

 

  안쪽에서 볼 때 그것은 세상의

  성곽 같았고

  바깥쪽에서 보면 마임 배우가 기대고 있는

  가상의 유리벽 같았다

 

  한번 그어진 선은

  밟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지만 감정의 안쪽으로 움직이는 동안

  죽죽 그어진 생활이

  더 많은 불안과 경계를 부추기고 있었다

 

  때때로 새로운 선을 긋고

  기존의 선들이 키워 낸 모서리들을

  슬프게 바라보았다

 

  모서리만 남은 인격을 참을 수 없어 떠나버린 친구

  품에 안고 바라보다 보이지 않는

  상처를 입은 연인도 있었다

  부모와 형제마저 숨죽여

  그들의 안부를 궁리할 무렵

 

  매일 배우가 기대고 있는 저 유리벽이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서리의 궤적만이 빛나는 고립을

  별빛이라 부를 때

  사람들은 행운과 인연의 초상화 대신

 

  자신의 동공에 몇 개의 별빛을 붙여 놓는다

 

  무수한 선들이 퇴적된 밤하늘을 잊어버리고

  부끄러운 이의 설렘과

  떠나간 이의 순수를 제 것처럼 이야기하다 마침내

  마지막 무게 중심을 모조리

  타인을 향해 쏟아버리면

 

  유리벽의 낭만은 조각난 흉기가 되어 날을 세운다

  말 없는 웃음에도 슬픔이 있어 몸을 떠는가

 

  사랑은 온몸의 근육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독해지는 것

  생활의 중력을 거슬러 불가능한 미래를

  능청스럽게 내디딘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별빛의 눈을 뜨고

  다시,

  당신의 모서리에 모서리를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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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1-2월(374)호 <현대시작품상 본심 추천작 3/ 기혁>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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