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허무희/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21. 3. 27. 02:14

 

    허무희

 

    정숙자

 

 

  침묵 속에 덜 뽑힌 칼이 있다면

  그 신체는 유쾌가 아니다

  발설되지 않아 어떤 잎에도 닿지 않지만,

 

  침묵 속에 아직 덜 멈춘 피가 희다면

  그 정신은 아직 완쾌가 아니다

 

  구김 찢김 뭉침 심지어 애틋한 파릇함까지를 품고 구석구석 쌓이는 인내, 그 침묵  자기공명영상에 비추어 볼까. 중력도 없는 시공을 젖은 날개로 떠도는 나비. 바로 그 무게가 밝고 가벼운 인화에 이르기까진 온 생애를 태울 수 있지, 설령 그가 고대에서 돌아온 철인이라 해도,

 

인과를 초월한 단검에 찔리고··· 베이게 되는

 

체온과 체중 날린 후에야

다시 말해 완전히 고꾸라진 다음에야

돌발/산발적 모순은 막을 내릴 터이지

 

빛도 바람도 사물도 아닌,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 게 될 때

비로소 자아는 참담한 침묵

얇은 필름을 벗어나겠지

 

허무희虛無喜

 

두 번 다시 허무에 갇히지 않아도 좋을··· 그 허무의··· 질식사에 탑승했을 때, 그날 비로소 침묵은 어원에 합당한 침묵에 편입되겠지. 최초이자 반개半開의 기쁨을 잇거나 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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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시학』 2021-봄(36)호 <미래시학 시단 2> 에서

  * 정숙자/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등, 산문집 『행복음자리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