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마천루/ 김점용

검지 정숙자 2021. 3. 25. 01:44

 

    마천루

 

    김점용

 

 

  폭포는 폭포다

  폭포를 샀다

  시장에 가니 50미터 100미터 123층짜리도 있었지만

  내 키 정도의 조그만 3층짜리 폭포를 샀다

  목숨을 주고 샀다

  누가 조금만 잘라 달라고 부탁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살았던 폭포는 벌써 가고 없다

  나는 없다

  이미 흘러가 버렸다

  폭포는 폭포다

  이른 아침 은행 앞에서

  높은 폭포를 이고 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서울역 화장실 문을 밀고 나오는데

  쏟아지는 폭포 속으로 울면서 사라지는 그 사람을

  멍하니 바라본 적도 있다

  평생을 흘러도

  폭포는 폭포여서

  폭포는 죽는다

  찰나마다 죽고

  찰나마다 살아난다

  사람들은 모두 폭포 속으로 사라진다

  사라진 사람들의 노래를 뚫고 별들의 이야기를 뚫고

  수요일을 뚫고 영원의 은유를 뚫고

  폭포는 폭포다

  그렇다 목숨을 주고

  폭포를 샀다

  나는 없다

  우린 모두

  이미 흘러가 버린 과거의 몸

  폭포는 폭포다

  폭포는 폭포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영원의 은유를 뚫고"란 표현이 단연 압권이다. 본성적 차이나 이질적 원거리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사물을 하나의 본성 안으로 강하게 응축시키는 데서 발생하는 미학적 에너지가 은유다. 둘 사이가 멀수록 은유의 마찰계수는 커진다. 그 점에서 은유는 둘 사이를 멀리 떼어놓는 기표 체계를 단숨에 '뚫는' 돈오頓悟'와 통하는 기제라고도 볼 수 있다. 성철 스님의 이른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는 겉으로 보기에 마찰계수 제로인 것 같지만, 자명해 보이는 진술 안에 이미 이질적 원거리성을 단숨에 주파하는 강력한 마찰력을 내장한 수준 높은 은유에 해당한다. 거기엔 모든 본성적 차이를 단번에 무화시키는 힘이 있다. '영원의 은유를 뚫는', 멂과 가까움의 횡단적 위임이 작동하는 돈오의 역량이 실린 말이기에 인구에 회자되는 법어일 수 있는 것이다. (p. 시 45-46/ 론 142-143) (권정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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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나 혼자 남아 먼 사랑을 하였네에서, 2020. 11. 20. <걷는사람> 펴냄

  * 김점용/ 1965년 경남 통영 출생, 1997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오늘 잠들 곳이 마땅찮다』 『메롱메롱 은주』, 평론집 『슬픔을 긍정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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