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
김상미
우리는 바다를 좋아해요.
당신들이 쓰다 버린 작은 투명우산처럼 투명모자처럼
유유히 바다를 떠다녀요.
우리는 입은 있지만 뇌는 없어요.
선과 악이란 그런 말을 알지도 못해요
그리움이나 사랑 같은 그런 말도 몰라요
우리는 그저 물결 따라 살랑살랑, 흐늘흐늘
수많은 촉수를 뻗었다 오므렸다 하며
작고 소중한 것들을 잡아먹어요
뇌는 없지만 우리가 물속 귀여운 요정처럼 예쁘다는 건 알아요.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다가오진 말아요.
우리 촉수엔 매서운 자포들이 숨어 있어
살짝이라도 잘못 건드리면 치명적인 독침을 맞을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 우리가 입은 레이스 자락이 아무리 멋져 보여도
절대 우리 촉수를 화나게 하지 말아요.
촉수 따라 우리 입까지 화를 내면
당신들쯤은 단박에 삼키고도 남을 정도로
입이 점점 커지거든요.
그러니 우리를 절대 화내게 하지 말아요.
우리는 바닷속을 유유히 떠다니는 해파리
뇌도 없고 뼈도 없고 눈물도 없어요
자생력 강한 우리에겐 진짜 죽음도 없어
당신들보다 더 오래오래 살아왔어요
아무리 무적함대가 우리를 덮쳐도
우리는 자가치료 능력이 누구보다도 강해
온 바다 구석구석 자유로이 헤엄쳐 다녀요.
그러니 조심하세요.
당신들의 무자비한 포획으로 우리의 천적들이
점점점 멸종되어 가는 이 바다를
언젠가는 우리의 왕국으로······
그런 꿈 같은 꿈
뇌 대신 입으로 꾸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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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문예』 2020-겨울(91)호 <신작시>에서
* 김상미/ 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검은 소나기떼』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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