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익균_허기진 내 영혼과 함께...(발췌)/ 소식 : 이덕규

검지 정숙자 2021. 3. 21. 03:19

 

    소식

 

    이덕규

 

 

  나비 한 마리가 너럭바위 위에 앉아 아무런 기약 없이 떨어져 쌓이는 꽃잎 사연들을

  벌써 여러 장째

  복사하듯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합니다

 

  해가 지기 전에

  먼 실연의 벼랑 끝에 맺힌 꽃봉오리에게

  이 사태를 전하러 가야 하는데

  흰나비가 문득 날개를 접고 골똘해집니다

 

  한때 뜨거웠던 기억에 피가 도는지 캄캄했던 바위가 조금씩 물렁해지는 한낮입니다 

      -전문-

 

 

   허기진 내 영혼과 함께 먹는 혼밥(발췌) - 김익균/ 문학평론가

   나비는 바위 위에 앉아서 날갯짓을 한다. 그것이 시인에게는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나비는 바위 위에 떨어져 내리는 꽃잎들의 사연을, 그 기억들을 복사하는 동작 그 자체이다. 나비의 날갯짓은 책장 넘기는 사람들의 무심하고 섬세한 손놀림처럼 아름답다. 우리가 시를 읽고 그 감동을 누군가에게 전해주듯이 나비는 그렇게 "꽃잎 사연들"을 읽고 저 먼곳에 있는 "먼 실연의 벼랑 끝에 맺힌 꽃봉오리에게" 전해준다.

  나비의 기억에 피가 도는 동안 "캄캄했던 바위가 조금씩 물렁해"진다. 이것은 꿈일는지도 모른다. 나비와 꽃잎 사연과 바위가 혼융되는 순간을 사는 것인지 유한한 존재로서 인간을 사는 것인지 그 분별을 떨칠 수 있기까지 멈추지 않고 심경心經을 읽어야 하리라. (p. 시 106/ 론 109)

 

  --------------------- 

  * 『불교문예』 2020-겨울(91)호 <신작시 특집/ 해설>에서

  * 이덕규/ 1998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밥그릇 경전』 『놈이었습니다』 

  * 김익균/ 2010 『시작』으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 『서정주의 신라정신 또는 릴케 현상』, 공저 『근대 한국의 문학지리학』, 공저 『미당 서정주와 한국 근대시』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힘/ 이지엽  (0) 2021.03.21
한밤중에 그네 타기/ 이중동  (0) 2021.03.21
명절/ 김성규  (0) 2021.03.20
해파리/ 김상미  (0) 2021.03.20
벤치 에세이/ 임서원  (0) 2021.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