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상根上
김화순
소나무 뿌리가 흙 위로 올라 왔다
뿌리로 살던 시간을 버렸다
뿌리는 강렬한 햇볕을 버티고 버티다
온몸 뒤틀며 서서히 가지가 되어간다
머리 위에 구름꽃 이어볼 날 올까
봄비에 젖고 젖으면 연둣빛 이빨 돋아날까
뿌리는 궁리 중이다
나는 지금 뿌리일까 가지일까
가지가 되었다면 몇 번의 푸른 잎을 달아 보았을까
늘 그 자리여서 아프고 힘들지만
늘 그 자리여서 편안하다
세찬 바람과 폭우가 납작해진 시간을 흔들어도
나는 도돌이표처럼 제자리에서 파문진다
뿌리를 밀어준 땅속 단단한 어둠처럼
나를 밀어주던 힘센 열망은 어디로 갔다
뿌리의 시간이 가지의 세계로 편입하는 일이
알생일대의 모험이었다면
가지를 접고 뿌리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일도
일생일대의 모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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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창작』 2021-봄(169)호 <2000년대 시인 26인/ 신작시>에서
* 김화순/ 2004년 『시와 정신』으로 등단, 시집 『구름출판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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