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이병국
침대에 엎드려 시인의 유고 시집을 읽는다 푸코가 나란히 누워 그릉그릉하고 애인은 먼 데서 여러 번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고 있다 손 뻗으면 닿을 곳에는 장비가 제자리 산책을 하다 잠에 들고 어느 안녕의 마을에 집을 지어 완연한 하루를 따라나서고 싶다면 이불 밖으로 나온 발가락 너머로 슬그머니 나를 미루어두어도 되겠다 이미 아무렇게나 아무래도 아무렇지 않은 날들 버티려 하지 않아도 아프지 않은 날들 흔들리지 않아도 흔들리고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날들이 머리맡에 수북히 쌓여
아늑하고
나직하게
늘어난 티셔츠 펑퍼짐한 반바지
하염없이 밀려난 여분
꾹
꾹
누르며
그래도 된다고
조금 뒤처져도 괜찮다고
그래도 될 거라고
그런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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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문화』 2020-가을(55)호 <포커스, 젊은 시 5인선>에서
* 이병국/ 2013년 ⟪동아일보⟫로 시 부문 & 2017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평론 부문 당선, 시집 『이곳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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