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다섯 걸음/ 문화영

검지 정숙자 2021. 3. 9. 00:27

 

    다섯 걸음

 

    문화영

 

 

  우린 같이 걸었다 직박구리 소리를 따라 덤불에 들어가기도 하고 비 냄새를 맡으며 흙길을 걷기도 했다 신발에 붙은 진흙더미를 신고 발맞추어 걷느라 뒤뚱거렸다 간간이 너의 웃음소리가 내 얼굴에 부딪쳤다 쳐다보지 않아도 너는 콧잔등을 찡그린 채 고개를 왼쪽으로 꼬고 웃고 있을 것이다 단추가 풀리듯 나는 주저리주저리 가슴속에 있는 것들을 쏟아놓았다

 

  너는 흘리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면서 천천히 손수레를 접듯 구김의 방향대로 다시 접어 내 호주머니에 넣어주기도 했다

 

  어제와는 달리 너는 말꼬리를 툭 자른다 포인트를 못 잡고 나는 비비적거린다 천식을 앓는 내 가슴이 갸릉거린다 너는 빨리 걷는다 나는 뒤따라 가다 걸음이 느려진다 우리가 쉬어가던 느티나무 밑에 네가 서 있다 바람이 그늘을 살려놓고 있다 어깨를 흔들어 불안을 털고 있을 네가 보인다 다섯 걸음이면 너를 따라잡을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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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문화』 2020-가을(55)호 <정예 시인 신작시 22인 선>에서

   * 문화영/ 2016년 『시에』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