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티 분
홍정숙
노름을 하면서 타지로 떠돌던 팔수 아버지
삼 년 만에 집에 젊은 여자를 데려왔다
우물 안처럼 어둑하던 팔수 엄마 눈에 불이 켜졌다
그 여자와 거미가 줄을 친
사랑채에 기거하다가
여자만 남겨두고 야반도주하던 날
눈 위에 찍힌 남자 발자국은 안방 앞에 있었다
그 여자, 우물 물 길어오면
본처와 사춘기 자식들이 물동이 깨뜨려버렸고
밭머리에 서성이면 욕설 묻은 흙덩이 날아왔지만
집을 나가지 않았다
윤나는 검은 쪽진 머리
치자꽃이 스민 듯한 입술을 두고
폐를 앓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집에 들어온 지 반년 만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아무도 울지 않는 이상한 상가喪家였다
마을 사람들이 장사를 지내주던 날
도랑에 마구 버린 코티 분과 볼연지
산산조각 난 화장거울,
여자의 한恨을 감추던 분첩 위로
꽃잎들이 내려앉았다
앵두꽃 살구꽃 복사꽃잎이
코티 분 향기로 흩날리는 날이었다
꽃들이 한꺼번에 피는
꽃샘바람 부는 날이면
그 여자 살냄새 풍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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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온문학』 2020-겨울(26)호 <시가 여무는 창>에서
* 홍정숙/ 경북 의성 출생, 1984년 『죽순竹筍』으로 등단, 시집 『풀씨』 『물방울 목걸이』 『연잎 찻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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