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코티 분/ 홍정숙

검지 정숙자 2021. 3. 8. 00:41

 

    코티 분

 

    홍정숙

 

 

  노름을 하면서 타지로 떠돌던 팔수 아버지

  삼 년 만에 집에 젊은 여자를 데려왔다

  우물 안처럼 어둑하던 팔수 엄마 눈에 불이 켜졌다

  그 여자와 거미가 줄을 친

  사랑채에 기거하다가

  여자만 남겨두고 야반도주하던 날

  눈 위에 찍힌 남자 발자국은 안방 앞에 있었다

 

  그 여자, 우물 물 길어오면

  본처와 사춘기 자식들이 물동이 깨뜨려버렸고

  밭머리에 서성이면 욕설 묻은 흙덩이 날아왔지만

  집을 나가지 않았다

 

  윤나는 검은 쪽진 머리

  치자꽃이 스민 듯한 입술을 두고

  폐를 앓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집에 들어온 지 반년 만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아무도 울지 않는 이상한 상가喪家였다

 

  마을 사람들이 장사를 지내주던 날

  도랑에 마구 버린 코티 분과 볼연지

  산산조각 난 화장거울,

  여자의 한을 감추던 분첩 위로

  꽃잎들이 내려앉았다

  앵두꽃 살구꽃 복사꽃잎이

 

  코티 분 향기로 흩날리는 날이었다

 

  꽃들이 한꺼번에 피는

  꽃샘바람 부는 날이면

  그 여자 살냄새 풍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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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온문학』 2020-겨울(26)호 <시가 여무는 창>에서

  * 홍정숙/ 경북 의성 출생, 1984년 『죽순竹筍』으로 등단, 시집 『풀씨』 『물방울 목걸이』 『연잎 찻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