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고치는 사람/ 박해람

검지 정숙자 2021. 3. 4. 22:12

 

    고치는 사람

 

    박해람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곳을 살펴보면

  거기, 고치는 사람이 앉아있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는

  그런 것들 고치러 가면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이따가 찾으러 오라는 말

  혹은 아주 먼 곳을 들고 가면

  아주 가깝게 고쳐놓는 사람

 

  손닿지 않는 것들을 주위로 바꿔 놓는 사람

  인근隣近을 서성이게 하는 사람

 

  천 개도 넘는 기술을 뒤져 매듭 하나를 풀고 등 굽은 천품으로 태양의 뚜껑을 열고 닫는 사람

 

  몇 푼 삯을 주고 멀리 가서 또 망가지는 일들이거나

  망가뜨리는 일들의 배후 같은

  정작 자신이 앉아있는 곳은

  온통 망가진 것들 투성인

  고치는 사람

  고장 나는 일들은 뻔한 일들이고

  고장 나게 하는 일들은 늘

  복잡한 일들이지만

 

  어깨너머로 보고 고치는 법을 배웠다는 사람

  미간과 손끝은 이미 오래 전에

  고장 난 사람,

  서랍을 열고

  또 버려진 부품들을 찾고 찾아서

  끊겼던 냇물 흐르는 소리를 고치고

  지구의 고장 난

  몇 초를

 

  기어이 고쳐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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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산맥』 2021-봄(45)호 <신작시>에서

  * 박해람/ 199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낡은 침대의 배후가 되어가는 사내』 『백 리를 기다리는 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