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창
우베 그뤼닝(Uwe Gruening, 독일)
우리가 돌아왔을 때, 이곳
지구의 나이를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빙하 밑에서 납작하게 바뀌어
산山들은 조용히 쉬고 있었지요.
어떤 아라라트 산도 우리의 눈길에는
희망의 빛을 던지지 않았지요.
해초海草 낀 여러 웅덩이 가까이에서
인간은 지구의 내부를 바닥까지 다 마셔버렸습니다.
우리는 늪 바로 곁에
우리의 입을 갖다 댔지요.
그러나 살아있는 숨결로 뒤덮인
거울은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언젠가 한 번
만물이 존재하기도 했었지요.
지금은 세 번째로 깨어나길
열망할 수 없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바싹 말라버린 웅덩이 위로 석화石化된 잎새들을 가진
물푸레나무 화석이 일어섰지요. (···) 어떤 얼음의 살갗 같은
어둠이 덮인 혹한酷寒을 우리는 목격했지요.
옛날의 것과 동일한 텍스트가 세계와 언어를
품어 감싸고 있는 것이 기억 속에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알아차렸습니다. 그 텍스트가
어떻게 생명을 죽이고 갈기갈기 찢어놓았는지를.
▶기후변화의 도전에 대한 현대시의 응전(발췌)_송용구/ 문학평론가, 시인
시의 화자인 '우리'는 누구인가? 찰튼 헤스턴의 열연으로 인상 깊은 영화 「혹성탈출」에서 '빛'보다 빠른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쾌속으로 질주하다가 지구로 '돌아온' 우주인과 같은 존재가 '우리'다. 지구의 '나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시간이 흘렀다. 우주선의 운행 속도가 빛보다 빠른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와 함께 살았던 동시대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직접 목격한 것은 인류의 역사가 종결된 현장이다. 우리가 자랑하던 첨단 과학기술은 멸망한 왕국의 녹슨 유물처럼 무너져 있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이륙하던 영광의 시절을 무색하게 만드는 지구의 처참한 현재가 우리의 눈 앞에 펼쳐진다. '빙하' 밑으로 가라앉은 '산山들'은 쉬고 있다. '쉼'은 죽음을 의미하는 은유다. 에틸렌, 이산화황, 이산화질소, 포름알데히드 등을 먹고 마시며 비대해진 '온난화'의 재앙이 지구의 명줄을 끊어놓은 것이다. 우베 그뤼닝의 「팽창」은 기후변화로 인하여 일어날 수 있는 빙하기의 미래상을 경보警報하고 있다. (p. 시 30-31/ 론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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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 2021-봄(45)호 <기획특집/ 기후변화의 도전에 대한 현대시의 응전>에서
* 송용구/ 문학평론가, 시인, 저서 『생태언어학의 렌즈로 바라본 현대시』 『생태시와 생태사상』 『인문학, 인간다움을 말하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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