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드니 수도원
황유원
잘린 머리는 잘린 머리다
도끼로 잘렸든 톱으로 잘렸든 칼로 잘렸든
잘린 머리는 잘린 머리고
잘린 머리는 몸통과 분리된 머리
머리는 더 이상 몸을 챙기지 않아도 되어서 좋을 것이고
몸은 더 이상 머리와 실갱이를 벌이지 않아도 되어서 좋을 것이지만
그러나 그 잘린 머리
잘려서 속이 다 시원한 머리를 굳이 또 두 손에 들고
한 발
한 발
걸어 나간 사람이 있다
죽으라고 정해진 곳에 이르러서야
그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쓰러진 사람
그냥 원래 쓰러진 자리에서 영영 쉬었으면 좋았을 걸
목 위에 있으나 손 위에 있으나 별반
다를 바 없는 머리를 들고
굳이 또 일어나 몽마르트를 걸어가는 이여
난민 천막과 테러범이 숨어 있는 아파트를 지나
걷고 걷고 또 걸어야만 하는 두 다리의 기적이여
잘린 머릿속에서 핏물과 함께 메말라 가는 기억이여
이미 잊은 것들과
이제 잊어야 할 것들을 들고
또다시
앞으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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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징학 연구소』 2021-봄(창간)호 <포스트 2000 시인_제3부/ 신작시>에서
* 황유원/ 시집 『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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