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박대현_세계의 '후속편'을 위한...(발췌)/ 환상향 : 조윤재

검지 정숙자 2021. 3. 3. 02:52

 

    환상향

 

    조윤재

 

 

  거울 너머를 보는 동안 몇 차례의 맑음이 교차되었다. 안쪽 세계는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기를 쓰면 추억이 아닌 물건이 소모된다. 그러므로 바깥과 안쪽 사람은 각기 다른 얼굴을 가진다.

 

  세계는 그들이 동일 인물이라는 걸 안다.

  단지 같은 방에서도 여러 주사위가 굴러다니고 있는 것이.

 

  그만 결말을 달리하고 말았다.

  거울 바깥쪽의 사람은

  며칠 전 아스팔트 위에 말라붙은 채로 발견되었고.

 

  이 아스팔트 밑에는 뼈보다도 단단한 게 묻혀 있었다. 누군가 죽었다는 걸 알아도 예를 준비할 수가 없었다. 이 황야 같은 세계에서 거울은 청사진처럼 결말을 구분한다.

 

  거울로부터 파생된 걸 생산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다. 유리로 만들어진 책에서 유리로 만들어진 글을 보이지 말고, 햇빛에 반사되는 것들은 뭐든 창밖으로 비추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다. 맑은 하늘에서 우박이 쏟아지고 있었다.

 

  출처가 불확실한 곳에서

  나는 파편이 될 수 있다. 

  건물 안을 실외라 부르는 곳에서

  나는 누군가의 발가락을 건드린다.

 

  감히 파편이라고 소개할 수 없었다. 어떤 불행한 사람은 집 안의 거울부터 부수고 내다버린다. 그 자신이 파편이 될 때까지 진행된다.

 

  누군가 아스팔트 위에 날카로운 쓰레기를 투기했을 때

  남은 자들은 서로를 식별할 수 없었다.

     -전문, 『현대시학』 2020. 5-6월호

 

 

  ▶세계의 '후속편'을 위한 주체의 새로운 전략/조윤재 시에 대하여(발췌)_박대현/ 문학평론가 

  이 시의 제목이 '환상향幻像鄕'이다. 환상통 혹은 환상수족이라는 말은 있어도 환상향이라는 말은 낯설다. 물론 컴퓨터게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다를 테지만 말이다. '환상향'은 <동방 프로젝트>라는 게임의 세계관 명칭이다(『윈스 어폰 어 타임 인 느와르』 역시 슈팅 게임에서 시적 발상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세계와도 흡사하다. 환상과 현실이 뒤섞여 있는 공간. 시인은 아마도 이 게임에서 제목을 빌려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 시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이 시에서 환상과 현실의 경계는 '거울'이다, '거울'이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이 시에서 "안쪽 세계"는 당연히 거울의 안쪽이며, "바깥쪽"세계는 거울의 바깥쪽을 의미한다. 거울 안쪽의 세계는 바깥쪽의 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문제는 "바깥과 안쪽 사람"이 "각기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그들이 동일 인물이라는 걸 안다"는 사실이다. "같은 방"에서 굴러다니는 "여러 주사위"처럼 말이다. 주사위의 숫자가 무엇으로 결정되든 동일한 주사위임이 분명하듯이, 이 세계가 보기에 거울 안쪽과 거울 바깥쪽의 인물은 동일한 인물임에 분명하다. 다만 다른 사건이 일어날 뿐이고, 결말이 다를 뿐이다. 거울 안쪽은 "환상향"의 세계다. 물리적 법칙이 전혀 다르게 적용되는 세계. 거울 바깥의 세계가 아스팔트 위에서 누군가 죽어있는 세계라면, 아마도 다른 장면이 펼쳐져 있을 거울 안쪽의 세계는 현실화 되지 못한 잠재성으로 가득한 세계다. 따라서 거울은 잠재성의 세계에 맞닿은 현실세계의 계면界面이라 할 것이다. 이 계면은 달리 말해 현실세계의 한계다. 거울의 안쪽 세계는 현실세계에서 펼쳐지지 못한 주름(pli)들의 세계다. 현실세계가 결핍으로 가득하다면, 거울 안쪽의 세계는 진정한 세계로서의 가능성을 열어보일 수 없다.

  그렇다. 시인은 거울 안쪽의 세계에 대한 탐구를 시도하는 중이다. "거울에서 파생된 걸 생산하지 말"고, "유리로 만들어진 책에서 유리로 만들어진 글을 보이지 말고, 햇빛에 반사되는 것들은 뭐든 창밖으로 비추지 말라는 경고"로 가득하다. 그러나 현실세계, 즉 거울 바깥의 '나'라는 주체는 거울 안쪽의 세계를 모르는 이상한 조각 '파편'에 지나지 않는다. 거울 안쪽의 세계는 곧 시인이 획득한 주체의 "출처"이면서 '나'라는 주체의 잠재성(virtuality)으로 가득한 세계다. 따라서 거울을 부순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이 세계는 무한한 잠재성의 주름들이 거세되어 단 하나의 파편 조각만으로 이루어진, "서로를 식별할 수 없는 세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윤재의 시는 거울을 경계로 하여 이쪽과 저쪽의 현실을 탐구하기도 하지만, '현재'라는 시간을 경계로 현재의 이편과 저편에 해당하는 과거와 미래를 탐구하기도 한다. (p. 시 202-203/ 론 20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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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징학 연구소』 2021-봄(창간)호 <이 신인을 주목한다/ 자선시/ 평론>에서

  * 조윤재/ 2020년 『시인동네』로 등단

  * 박대현/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 『헤르메스의 악몽』 『황홀한 아파니시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