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에밀레_용광로 청년*에 대하여/ 오성인

검지 정숙자 2021. 3. 3. 00:59

 

    에밀레*

    -용광로 청년에 대하여

 

    오성인

 

 

  도대체 어떤 극락이 아이를 미친 불길 속에 넣으라고 합니까 만일 세존의 가르침이 그러하다면 결단코 따르지 않겠습니다 바라건대 아이를 데려가지 마십시오

 

  -엄마, 나쁜 일은 아닐 거야 나를 낳아 주었으니 이제는 내가 당신 가슴에 맑고 싱싱한 꽃으로 필게 걱정 말아요

 

  어머니 오늘도 저는 狂溫 위에 섰습니다 펄펄 끓는 용광로 쇳물이 메두사의 머리카락처럼 날름거립니다 저는 여태껏 누구를 깊게 녹여보거나 누구를 위해 녹아본 일이 없습니다, 다만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피를 쉽게 식지 않도록 힘을 기울일 뿐입니다 일평생, 가난한 두 가슴으로 오롯이 저를 품어낸 당신, 강줄기 같은 당신 등에 저는 얼굴을 씻다가 종종 잠이 들었습니다 천도 넘는 온도를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견디겠다 했을 때 말없이 등만 쓰다듬으셨지요 용광로가 폐철을 녹여 새 철을 만드는 정성으로 주저앉은 가슴의 골짜기를 일으켜 세우고, 뼈가 가죽을 밀어내는 메마른 등과 텅 빈 자궁을 채울 것입니다

 

  -얘야, 어젯밤 꿈에 너를 봤구나 별일은 없니 내 손으로 밥을 지어 먹인 지가 엊그게 같은데 꿈이나 생시에나 내 안을 아낌없이 내주어도 부족하기만 한 아들, 내 아들아

 

  서른 전, 당신에게 닿습니다 젖물이 들어 있던 자리는 아득히 깊고 넓어 나는 감히 측량할 수 없습니다 제 목소리 어머니 가슴에 꽃 피도록 에밀레 에밀레 에밀레

    -전문, 『푸른 눈의 목격자』 (2018, 문학수첩)

 

 

    * 2010년 9월 7일 새벽 2시께 충남 당진군 환영철강에서 근로자 A씨가 작업 중 5m 높이의 용광로 속에 빠져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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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징학 연구소』 2021-봄(창간)호 <포스트 2000 시인_제3부/ 대표시>에서

    * 오성인/ 시집 『사라진 입을 위한 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