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낙타 이동도서관/ 길상호

검지 정숙자 2021. 3. 3. 00:35

 

    낙타 이동도서관

 

    길상호

 

 

  한 무더기 책을 지고서

  마을을 찾아다니는 낙타가 있다네

 

  맨발의 아이들이 모여

  아카시아 나무 아래 그늘을 깔아놓고

  속눈썹 긴 사서를 기다린다네

 

  때로 신기루를 서술하고

  때로 오아시스를 펼쳐놓는

  사막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아이들은 저마다의 혹에 출렁출렁

  목말랐던 이야기를 채운다네

 

  가지고 놀 게 모래뿐인 바람도 슬쩍 끼어

  몇 줄 함께 읽으면

  먼지를 내려놓고 잠시 착해진다네

 

  낙타가 길게 써놓은 발자국 자서전은

  주제가 너무 무거운 책,

  아무도 빌려가지는 않지만

 

  발바닥이 두꺼워진 아이들에겐 이미

  낙타의 책이 쥐어져 있다네

  구름이 한 조각 터벅터벅

  맨발로 뜨거워진 오후를 건너가네

 

 

   ---------------------

   * 『상징학 연구소』 2021-봄(창간)호 <포스트 2000 시인_제1부/ 신작시>에서

   * 길상호/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