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이동도서관
길상호
한 무더기 책을 지고서
마을을 찾아다니는 낙타가 있다네
맨발의 아이들이 모여
아카시아 나무 아래 그늘을 깔아놓고
속눈썹 긴 사서를 기다린다네
때로 신기루를 서술하고
때로 오아시스를 펼쳐놓는
사막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아이들은 저마다의 혹에 출렁출렁
목말랐던 이야기를 채운다네
가지고 놀 게 모래뿐인 바람도 슬쩍 끼어
몇 줄 함께 읽으면
먼지를 내려놓고 잠시 착해진다네
낙타가 길게 써놓은 발자국 자서전은
주제가 너무 무거운 책,
아무도 빌려가지는 않지만
발바닥이 두꺼워진 아이들에겐 이미
낙타의 책이 쥐어져 있다네
구름이 한 조각 터벅터벅
맨발로 뜨거워진 오후를 건너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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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징학 연구소』 2021-봄(창간)호 <포스트 2000 시인_제1부/ 신작시>에서
* 길상호/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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