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의 기준점
배정숙
석유 등잔을 기억하시는지
어룽거리는 꽃잠을 뒤로 하고
오랫동안 밝음에만 매진했다
등잔불
이는 어둠도 밝음도 아닌 중간 고즈넉한 섬에서 동공을 넓히는 일이다
밝기가 답답하다 해서
심지*를 맘껏 올린다면 그을음 때문에 견딜 수 없다
넘치면 모자라니만 못하다는
과하지 않은 빛의 한 수다
모자란 빛은 문창호에 걸린 달빛의 묵상으로 채우기 위해
거울을 닦는다
마음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시력이다
고요함에 이르는 길이다
불이 흐리다고 바짝 다가앉아서도 아니된다
등잔 밑이 더 어둡다
그림자 아래는 말귀가 침침해서 옳은 답이 자명하지 않으므로
가까운 곳을 의심해야 한다
너와 나 사이 적당한 깨달음의 간격은 객관의 거리가 된다
빛과 그림자의 사용법을 이해한다면
벽에서는 여우나 강아지 뿔난 도깨비가 뛰놀게 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빔프로젝터다
그러나 조그만 바람에도 어둠의 순도는 흔들리는 것
바람 앞에 등불이라 위태로운 허공이다
꺼질 듯 꺼지지 않는 것은 자신을 향한 심지를 가다듬었음이라
석유의 역류 그 보이지 않는 밀고 당김을 믿는다면
심지의 예언은 적중하고
휘청거리는 불의 혀는 끝내 제자리로 선다
바람과의 갈등을 견디는 사이
세상의 모든 중심이 바람 앞에 등불이다
-전문-
* 석유 등잔 따위에 불을 붙이기 위해 꽂은 실이나 헝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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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표현』 2020-겨울(74/終刊)호 <이 계절의 신작시> 에서
* 배정숙/ 2010년 『詩로여는세상』 으로 등단, 시집 『나머지 시간의 윤곽』 『좁은 골목에서 편견을 학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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