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심지의 기준점/ 배정숙

검지 정숙자 2021. 2. 25. 20:54

 

    심지의 기준점

 

    배정숙

 

 

  석유 등잔을 기억하시는지

  어룽거리는 꽃잠을 뒤로 하고

  오랫동안 밝음에만 매진했다

 

  등잔불

  이는 어둠도 밝음도 아닌 중간 고즈넉한 섬에서 동공을 넓히는 일이다

  밝기가 답답하다 해서

  심지*를 맘껏 올린다면 그을음 때문에 견딜 수 없다

  넘치면 모자라니만 못하다는

  과하지 않은 빛의 한 수다

  모자란 빛은 문창호에 걸린 달빛의 묵상으로 채우기 위해

  거울을 닦는다

  마음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시력이다

  고요함에 이르는 길이다

 

  불이 흐리다고 바짝 다가앉아서도 아니된다

  등잔 밑이 더 어둡다

 

  그림자 아래는 말귀가 침침해서 옳은 답이 자명하지 않으므로

  가까운 곳을 의심해야 한다

  너와 나 사이 적당한 깨달음의 간격은 객관의 거리가 된다

  빛과 그림자의 사용법을 이해한다면

  벽에서는 여우나 강아지 뿔난 도깨비가 뛰놀게 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빔프로젝터다

 

  그러나 조그만 바람에도 어둠의 순도는 흔들리는 것

  바람 앞에 등불이라 위태로운 허공이다

  꺼질 듯 꺼지지 않는 것은 자신을 향한 심지를 가다듬었음이라

  석유의 역류 그 보이지 않는 밀고 당김을 믿는다면

  심지의 예언은 적중하고

  휘청거리는 불의 혀는 끝내 제자리로 선다

  바람과의 갈등을 견디는 사이

  세상의 모든 중심이 바람 앞에 등불이다

     -전문-

 

 

     * 석유 등잔 따위에 불을 붙이기 위해 꽂은 실이나 헝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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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표현』 2020-겨울(74/終刊)호 <이 계절의 신작시> 에서

    * 배정숙/ 2010년 『詩로여는세상』 으로 등단, 시집 『나머지 시간의 윤곽』 『좁은 골목에서 편견을 학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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