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근원/ 이정란

검지 정숙자 2021. 2. 23. 02:06

 

    근원

 

    이정란

 

 

  어둠과 빛이 그러저러 나눠 가진 공간에서

 

  강아지 한 마리와 나의 서성거림이 교차된다

 

  지구가 숨겨둔 여분 공간인 것만 같다

 

  서로의 말을 버리고

 

  자기만의 부피를 잊고

 

  거기가 세상의 전부인 듯

  전부여도 일부

  아니어도 일부

 

  아닌 것이 그렇고

  그런 것이 아닌

 

  잘 벗긴 개의 털이

  새로 확정되는 인간의 지성처럼

 

  가지런히

  출렁이는 것을

  강아지는 모르고

 

  우리는 함께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르게

  순환한다

 

  두둑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

  새로 태어나는 무언가의 울음소리처럼

  점점

 

  아직 모를 뿐

  어딘가에서 달려온 근원이 머리칼을 스쳐 몸을 통과한 후

  누군가에게 불을 지르고

   

 

   --------------

   * 『열린시학』 2020-겨울(97)호 <열린시학이 주목하는 시인/ 신작> 에서

   * 이정란/ 1999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이를테면 빗방울』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