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장미 가시를 추스르다/ 김밝은

검지 정숙자 2021. 2. 22. 01:31

 

    장미 가시를 추스르다

 

    김밝은

 

 

  향기 나는 말로 묶은 장미꽃다발과 살가운 치즈케이크를 옆으로 치우자 기다렸다는 듯 숨겨둔 가시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런, 그날의 감정은 싹 지워버린 밋밋한 말투인 걸 할 말은 아직도 멀었는데 벌써 눈이 뜨거워지면 어떡하냐구 문학소녀 같은 감상문을 아직도 품고 산단 말이야? 금세 퀭해져버린 제목을 들여다보기도 전 페이지들이 해쓱해진다 쏟아진 가시들을 주워내려면 많은 시간을 공들여야 한 텐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입꼬리가 샐쭉해지고,

 

  당신의 행간엔 윤기나는 나비의 춤사위만 가득해보여 순간 오싹해진다 나비의 솜털이라도 슬쩍 꼬집어버릴까 떨어진 가시에선 어리둥절 씁쓸한 종이냄새가 나고 거들먹거리며 돌여다보다 가차없이 밀쳐버렸던 시집의 시령詩靈이라도 따라왔는지 일어서야 할 무릎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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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시학』 2020-겨울(97)호 <이 계절의 시> 에서

  * 김밝은/ 2013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술의 미학』 『자작나무 숲에는 우리가 모르는 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