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제57회 열린시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中
표절
조남걸
혹여 봄이 오다가 여름이 된 걸까
히어리 꽃이 노란 색 봄을 표절하고 있다
꽃밭에서 어머니는 망각을 표절하고
아버지는 무덤 속에서 소멸을 표절하고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싫어했던 아버지를 표절했다
느릿느릿한 말씨와 헛기침 소리
구부정한 자세로 걷는 팔자걸음
나이 들수록 넓어지는 대머리
당뇨에 고혈압 고주망태가 되는 술버릇까지
표절이 넘쳐난다
그러나 표절할 게 남아 있다는 건
모두 살아 있다는 거다
나는 오늘 숲을 거닐며 숲을 표절한다
나방과 나비 그들의 애벌레
풀무치 여치 사마귀 그리고 이구아나
전부 내 안으로 뛰어든다
그런데도 저작권은 따지지 않는다
스스로 원본인 자연
그것은 가장 사랑스러운 허용이다
-전문-
*심사위원: 이지엽 · 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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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시학』 2020-겨울(97)호 <제57회 열린시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에서
* 조남걸/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0호 이천거북놀이 이수자, 청미문학 · 남천문학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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