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 드라이브
황동규
코로나바이러스 땜에 내내 집콕,
읽은 신문 다시 읽고
무작위로 오디오를 틀어놓고 뒹굴다가
오늘 오후, 반가운 후배 하나가 일부러 차를 끌고 와
두물머리로 드라이브 나갔다.
맑은 초봄 날씨, 차에서 내려
물새들이 나다니는 물가를 거닐었다.
나무 전망대에 마스크 쓴 느낌표처럼 꼿꼿이 서서
봄빛에 천천히 안기는 강물을 보았다.
내가 차를 몰았다면
앞이 탁 트이고 녹차 좋은 수종사水鍾寺쯤 올라갔겠지만,
오늘은 두물머리만으로 족하다.
종이 판지에 '찻집'이라 적은 조그만 카페에 들렀다.
아직 약간 추운 뜨락 탁자에 마스크 벗어놓고
둘이 마주앉아 따끈한 생강차 마시며
전화로 하면 고딕체가 될 말들을
한 시간 동안 편하게 평서체로 주고받았다.
1분쯤 말을 끊었다 잇기도 했다.
때가 어느 땐데
이런 자리 마련해준 사람과 날씨, 고맙다.
어디서 흘러오는지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게 된 나날 가운데
이 하루,
무지개 같다.
-전문-
▶오늘의 현실과 시(발췌) _ 이숭원李崇源/ 문학평론가
먼 곳에서 벗이 오니 참으로 즐겁다고 공자가 말했는데 병란病亂으로 두문불출의 시간을 보내다 모처럼 후배가 찾아와 초봄의 두물머리 물길을 보았으니 시인의 가슴이 얼마나 시원했겠는가. 둘이 나눈 정겨운 대화를 고딕체에서 평서체의 변화로 비유해 표현했다. 글자의 모양을 떠올리면 그날의 편한 말씨와 웃음이 머리에 그대로 그려지는 것 같다. 사람이 사는 것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인데, 질병의 전파로 더욱더 "어디서 흘러오는지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게 된 나날"을 살게 된 상태에서, 우연히 맞이하게 된 '두물머리 드라이브'의 기쁨을 시인은 "무지개 같다"고 간명하게 표현했다. 이 짧은 말 속에 무지개가 환기하는 여러가지 형상이 넘실댄다. 무지개로 피어나는 인정의 부드러움이 마음에 스며드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후배의 작은 제안을 이렇게 따스한 시로 녹여낸 시인의 도타운 마음이 훈훈하게 다가온다. 이런 마음만 유지된다면 모든 나날을 무지개로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p. 시 34-35/ 론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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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표현』 2020-겨울(74/終刊)호 <기획특집> 에서
* 황동규/ 195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풍장』 『겨울밤 0시 5분』 『연옥의 봄』 외
* 이숭원/ 1986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저서 『탐미의 윤리』 『몰입의 잔상』 『시간의 속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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