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반 일리치의 임종/ 조광현

검지 정숙자 2021. 2. 22. 01:13

 

    이반 일리치의 임종

 

    조광현

 

 

  도무지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남자

  이반 일리치*에게 의사들은 저마다

  건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죽을 병에 걸린 게 아니라고

  잘 치료하면 나을 수 있다고

 

  어느 날 찾아온 말기폐암 환자에게

  당신은 죽지 않는다고, 반드시 나을 것이라고

  구름 잡는 말을 했다

 

  그의 가슴에 굵고 긴 주사 바늘을 꽂고

  1리터의 흉수를 뽑아내면서 말했다

  보세요,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참을만하네요, 그저 참을만해요

  그 겨울 해질녘의 짧고 짙은 애상哀想

  잔뜩 찡그린 그의 얼굴에 잠깐 머문다

  한 사람을 속이는 것은 세상을 속이는 것이다.

 

  나는 그를 속이며 세월을 보냈다

  드디어 임종 임박한 순간

  온기가 사라진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미안합니다, 거짓말을 너무 했어요

  당신이 희망을 버릴까 봐 그랬어요

 

  들릴 듯 말 듯 그가 말했다

  다 알고 있었소, 나도 거짓말을 많이 했소

  얼마 후 석양에 걸린 구름 한 장

  파르르 몸을 떨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전문-

 

 

   *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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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시학』 2020-겨울(97)호 <이 계절의 시> 에서

   * 조광현/ 2006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때론 너무 낯설다』, 산문집 『제1수술실』 『그는 왜 오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