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임종
조광현
도무지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남자
이반 일리치*에게 의사들은 저마다
건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죽을 병에 걸린 게 아니라고
잘 치료하면 나을 수 있다고
어느 날 찾아온 말기폐암 환자에게
당신은 죽지 않는다고, 반드시 나을 것이라고
구름 잡는 말을 했다
그의 가슴에 굵고 긴 주사 바늘을 꽂고
1리터의 흉수를 뽑아내면서 말했다
보세요,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참을만하네요, 그저 참을만해요
그 겨울 해질녘의 짧고 짙은 애상哀想이
잔뜩 찡그린 그의 얼굴에 잠깐 머문다
한 사람을 속이는 것은 세상을 속이는 것이다.
나는 그를 속이며 세월을 보냈다
드디어 임종 임박한 순간
온기가 사라진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미안합니다, 거짓말을 너무 했어요
당신이 희망을 버릴까 봐 그랬어요
들릴 듯 말 듯 그가 말했다
다 알고 있었소, 나도 거짓말을 많이 했소
얼마 후 석양에 걸린 구름 한 장
파르르 몸을 떨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전문-
*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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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시학』 2020-겨울(97)호 <이 계절의 시> 에서
* 조광현/ 2006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때론 너무 낯설다』, 산문집 『제1수술실』 『그는 왜 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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