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의 것
최정례
세상은 다른 사람들의 것
나는 그들 사이에 맺혔다
사라지는 물방울 같은 것
이슬 같은 것
태어나기 전부터 그랬었고
태어난 후에는 손뻗어 가지려다
놓쳐버리고
나를 지배하는 집단의 힘, 그들만의 리그
이젠 내 몸의 건강까지도
그들의 손에 달려 있고
잠시 잠깐
저 노란 꽃과 눈 맞추는 것처럼
아이가
잠깐 기다려봐 내가
생일 선물로 사다리를 그려줄게
무슨 색 좋아해, 보라, 초록?
초록으로 그려줄게
사다리를 기다리는 그 순간만
세상은 푸르게 출렁이며 잠깐
그 잠깐을 뺀 나머지는 다 그들의 것
-전문, 『딩아돌하』 2020-가을호
▶이제는 세계와 작별해야 할 시간(발췌)_임지훈/ 『충북작가』 편집위원
진정한 주체로 보였던 '나'란 사실 하나의 환상에 다름없고, 나의 부분들은 모두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 사로잡혀 있다. 태어나기 전부터 운명론적으로 존재지어진 이 숙명적인 피동성은 나의 모든 것들을 규정한다. 나는 그러한 규정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존재이며 따라서 드러낼 수조처 없는 존재이다. 타자의 것을 경유하지 않고는 설명될 수 없는 '나' 자신이란 이런 의미에서 사회적 존재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비극인 셈이고, 그것은 나의 삶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을 때, 베일을 가로질러 '나'의 삶 그 자체에 밀접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각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잠깐"의 찰나가 있어 온전히 나의 것이 되는 순간이 있다. 최정례는 (···) 그 순간을 "푸르게 출렁이며 잠깐"이라는 시간으로 정립한다. 예컨대, 이 모든 것은 나의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행동에 따라 온전히 나만의 것일 수 있는 시간이 가능하다는 것. 어쩌면 그의 말처럼 문학이란 이 세계가 타자의 것이라는 것을 규명하는 동시에 타자의 손아귀에서 세계를 탈취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전염병이라는 재난을 마주힌 지금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좀 더 문학을 해야만 한다. 그렇게 우리의 세계를 차츰 되찾아 와야만 한다. (p. 시 276-277/ 론 277-278)
* 블로그주: 최정례 시인(1955-2021.1.16.)이 위 원고를 쓰고 발송할 때는 자신의 마지막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을 것입니다. 아니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앞날을 예견한 듯한 이 시를 옮겨 적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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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아돌하』 2020-겨울호 <시계간평> 에서
* 임지훈/ 서울 출생,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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