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다정한 둘레/ 김지민

검지 정숙자 2021. 2. 17. 02:49

 

    다정한 둘레

 

    김지민

 

 

  일가족이 목을 맨 그 나무는 우리 부부의 식탁이 되었다 누군가 발버둥 치며 죽어간 고도라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낮고 조용했다

 

  살아 있는 네가 형장이 될 수 있을까

 

  부엌에선 주전자가 끓고 있었고 나는 변기에 앉아 두려움에 관한 책을 읽었다 기억이라는 난처한 높이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니 분명 나를 엄마라고 부르던 것이 있던 것도 같은데

 

  화장실은 울창한 숲이 되어 나를 껴안는다 수많은 구멍을 지닌 여름 구멍 속의 목숨들은 눈을 감아 이 사랑을 묵인해준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자기가 낳은 것과 간음하겠어

 

  내 신발은 어디 있지

  나와 함께 걷던 작은 발자국은?

 

  열린 창문 사이로 광저우의 먼지가 날아든다 낯선 여자의 폐에 둥지를 틀기 위해 기꺼이 국경을 넘은 중국 남자 나는 그에게 식사를 대접한다 이렇게 찾아와줘 고마워요 염소고기를 먹어봐요

 

  평생 채식하는 것의 육질을

 

  남자는 접시 위로 바스러진다 마른 행주로 먼지를 닦아내자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된다 혼자였던 혼자 둘이었던 혼자 셋이었던 혼자 셋에서 혼자가 되었다가 다시 둘이 되었다가 다시 혼자가 된 혼자

 

  빈 보행기가 내 발치로 굴러온다 식탁에 뺨을 붙이고 잠이 든다 어제는 아득한 높이였던 것이 오늘은 안전한 높이가 되었구나 무덤처럼 기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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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딩아돌하』 2020-겨울호 <Before & After/ 신작시> 에서

  * 김지민/ 경기도 부천 출생, 202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