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김안
그는 이 도시가 다 알고 있는 사람이다.
감색 주머니 속에는 도시의 미래와 절망이 달그락거린다.
도무지 주머니 속에서 손을 빼지 않는 걸 보니
그는 이 도시를 무척 사랑하는 모양이다.
이 도시 사람들은 이 아이들을 다 알고 있다.
이 아이들이 왜 여기에 와서 꿈을 꾸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저녁이 몽롱한 몸을 흔들고 천사가 떨어뜨리고 간 횃불이 꺼져 가면
사람들은 길게 누워 아이들의 꿈에 접지한다.
그는 꿈속에서도 이곳에 대한 계획을 짜다가 다시 절망한다.
아이들은 꿈속에서도 감색 주머니 속 그의 손이 궁금하다.
가늘고 기다란 우울의 계단에서 쓰러지더라도
그는 손을 빼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는 이 아이들을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이 도시의 사람들이 아이들과 꿈을 꾸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전몰자를 기리는 비碑가 늘어만 가지만, 그 속에서는 사람들이 살 수 없다. 그는 이 도시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 스스로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이 끝없는 공포와 유령의 시절을 기념하고 있는지 모른다. 쓰러져 있는 도시의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서서. 그러므로,
광장은 서로가 서로에게 지루한 신화일 뿐이다.
검은 비碑 사이로
백조의 목처럼 가늘고 아름다운 빛이 쏟아진다.
씨앗을 쏟는 것처럼
어떤 비극은 우두커니 두면 오늘의 구원이 되기에
하느님은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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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아돌하』 2020-겨울호 <신작시> 에서
* 김안/ 서울 출생, 2004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오빠생각』 『미제레레』 『아무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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