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독재자/ 김안

검지 정숙자 2021. 2. 17. 02:31

 

    독재자

 

    김안

 

 

그는 이 도시가 다 알고 있는 사람이다.

감색 주머니 속에는 도시의 미래와 절망이 달그락거린다.

도무지 주머니 속에서 손을 빼지 않는 걸 보니

그는 이 도시를 무척 사랑하는 모양이다.

 

이 도시 사람들은 이 아이들을 다 알고 있다.

이 아이들이 왜 여기에 와서 꿈을 꾸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저녁이 몽롱한 몸을 흔들고 천사가 떨어뜨리고 간 횃불이 꺼져 가면

사람들은 길게 누워 아이들의 꿈에 접지한다.

 

그는 꿈속에서도 이곳에 대한 계획을 짜다가 다시 절망한다.

아이들은 꿈속에서도 감색 주머니 속 그의 손이 궁금하다.

가늘고 기다란 우울의 계단에서 쓰러지더라도

그는 손을 빼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는 이 아이들을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이 도시의 사람들이 아이들과 꿈을 꾸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전몰자를 기리는 비가 늘어만 가지만, 그 속에서는 사람들이 살 수 없다. 그는 이 도시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 스스로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이 끝없는 공포와 유령의 시절을 기념하고 있는지 모른다. 쓰러져 있는 도시의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서서. 그러므로,

 

광장은 서로가 서로에게 지루한 신화일 뿐이다.

검은 비 사이로  

백조의 목처럼 가늘고 아름다운 빛이 쏟아진다.

씨앗을 쏟는 것처럼

 

어떤 비극은 우두커니 두면 오늘의 구원이 되기에

하느님은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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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딩아돌하』 2020-겨울호 <신작시> 에서

 * 김안/ 서울 출생, 2004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오빠생각』 『미제레레』 『아무는 밤』